순화매점

그녀는 오늘이 카페를 정리하는 날이라고 했다. 계약 기간도 만료되었고,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것도 아니고, 겸사겸사 오늘 오후에 짐을 뺀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몽크스 하우스의 정원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면서 버지니아 울프와 그의 남편인 레더드가 정성을 다해 한해 한해 가꿔온 몽크스 하우스의 정원이 마치 하나의 소우주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마치 그곳에서 태어난 것처럼 생활했으며,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 안에서 평화를 얻었으며, 그 안에서…

무라카미 T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나 ‘더 스크랩’ 정도로 지루했어요. 그런데, 하루키의 에세이를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도 재미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자신이 없긴 해요. 그의 글에 너무 익숙한 제게만 적용되는 지루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니까. 늘 반복되는 위스키, 재즈, 마라톤 비유에 더 이상…

치즈와 버터

친구가 물었다. ‘치즈’ 들어봤어요? ….그건 먹어만 봤다고. 그건 그렇고 BTS의 ‘Butter’는 마이클 잭슨이 불러도 정말 잘 어울렸을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국내차트에서는 오마이걸의 ‘Dun Dun Dance’가 1위를 할 수 있었겠지. 그런데, ‘버터’라는 음악가도 있다는 걸 아시나요? ‘Butter’를 검색하다가 잘못 터치해서…

오마카세와 복명복창

그렇게 한 여덟 접시가 나온 직후였을 것이다. 또 새로운 접시가 우리 앞에 도착했고, 셰프는 뭐라고 웅얼거렸으며, 그 친구는 미간을 접으며 또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커다랗게 외쳤다.

다음 실연은 더 편해질 거예요

아주 가끔은 뭔가를 이야기해달라는 듯한 표정으로 차례를 넘겨주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의 증명을 위해 빈 칠판 앞에 선 학생처럼 난처해진다. 내가 더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괜찮아질 거야’ 정도뿐이다. 물론 쉽게 괜찮아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괜찮아진다.

문신시술자공유법

그녀는 얼른 손가락을 떼고는 고개를 숙였다. 숙인 고개 밑으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문신 속 유니콘의 뿔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도 순간적으로 빨간빛이 나는 것 같았단다. 유니콘 문신을 보던 버스 승객들이 일제히 시선을 그녀의 홍시 같은 얼굴로 돌렸고, 그녀의 얼굴은…

무언가를 잘 하기

태초에 계이름이 있고, 코드가 있고, 코드진행 가이드가 있지 않았겠지. 그냥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즐겼을 뿐일거다. 더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더 즐겁기 위해, 계속 반복에 반복을 하면서 말야.

비와 아이유

아침 식사를 하고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한참 동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틀 연속이라니, 이제 점점 비가 지루해지려는 참이었다. 마침 하늘도 살짝 열리고 있었고, 바닥의 웅덩이에서도 더 이상 빗방울을 볼 수 없었다. 하긴 24시간이 넘도록 음악을 트는 게 쉬운…

양자역학과 플러그

논리적으로는 콘센트 안에서 플러그를 180도 돌리기 전에 꼽혀야 하는데, 희한한 게 360도를 돌려도 절대 끼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목뼈를 뒤집어 고개를 꺾고 어깨뼈를 접은 불편한 자세로 플러그를 빙빙 돌리고 있자면, 정말 순식간에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오른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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