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제빈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을 단순히 소년 소녀의 성장담이나 성취에 관한 기록, 혹은 일반적인 연애소설 등으로 분류해 버리는 건 왠지 좀 아쉽다. 이 작품은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을 하이라이트 없이 그대로 떠 올린 것 같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제빈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을 단순히 소년 소녀의 성장담이나 성취에 관한 기록, 혹은 일반적인 연애소설 등으로 분류해 버리는 건 왠지 좀 아쉽다. 이 작품은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을 하이라이트 없이 그대로 떠 올린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책 소개보다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어떤 남자를 고발하고 싶어서이다.
언제부터인가 건널목 신호등에 적색 잔여 시간 표시등이 생겼다. 녹색불이 켜질 때까지 남은 시간을 친절하게 카운트다운 해주는 전광판이다.
한여름에는 누가 뭐래도 청량한 여성 보컬이 어울린다. 물론 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그렇긴 하지만… 오늘은 한번 인디씬 위주로 소개해 볼까?
올해 애플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건 화려한 인터페이스나 파편화된 신기능은 아니었습니다. 그 대신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바꾼 ‘Siri AI’와, 그것을 떠받치는 거대한 생태계를 들이밀었죠.
병원 원무과 창구에서 진단서를 받아들 때면, 늘 그 위에 찍힌 알 수 없는 기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질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육체적인 고통이, 영문자와 숫자의 조합으로 한없이 건조하게 치환된 순간이다.
바닥에 앉아있다가 무언가를 충전할 일이 생겼다. 그것의 전원을 연결하려고 오랜만에 벽의 매입형 콘센트를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그림처럼 덜렁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수년 전 집수리를 할 때 마무리를 제대로 못한 모양이다. 세상은 엉성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조직 내에서 경험은 더 이상 시장을 방어하는 참호가 아니라 변화를 지연시키는 요소로 전락할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데, 의사결정권자가 내세우는 ‘통찰과 안목(Judgment and Taste)’이 본질적인 기술 이해도 결여를 감추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방어기제인지, 혹은 리스크 헷징(Hedge)의 탈을 쓴 관료주의적 필터인지 엄격히 검증해야 하는…
음악을 듣다 보면 가끔 유독 가사에 매몰되어, 곡이 끝날 때까지 무너진 동상처럼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혹시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
그 질문에 마법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누구나 딸깍 서비스로 비슷한 레벨의 글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시대. 이제는 생각하고, 정리하고, 퇴고하고, 글을 올리기까지 들이는 절대적 시간을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그 가치를 부정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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