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북스 X 스타벅스

출처:펭귄북스

출판사는 몰라도 이 로고는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거다. 주황색 바탕에 홀로 서서 당신을 곁눈질로 바라보고 있는 펭귄은 바로 영국의 출판사, 펭귄 북스의 마스코트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출판사 설립의 기원을 따라가 보면 창업자가 이동 편을 기다리다가 지루해서 서점에 들러보니 가격 비싸고 재미도 없는 책들만 가득해서 저렴하고 재밌는 책을 보급하자는 생각을 했다는데, 뭐 감동도 없고 너무 지루한 에피소드 아닌가?

출처: FORTUNE – The greatest designs of modern times (March 16, 2020)

하지만, 시그니처 표지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독서가라면 이곳 책이 몇 권쯤은 책꽂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2020년 포춘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현대 디자인 100선 안에도 자랑스럽게 자리하고 있다.(이 안에는 ‘무인양품 밥솥’도 있음) 나도 표지가 너무 예뻐서 집어든 적이 꽤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에는 2008년 웅진싱크빅 출판부분과의 합작으로 ‘펭귄 클래식 코리아’라는 타이틀로 펭귄 클래식 시리즈가 발간되었는데, 펭귄북스는 2013년 미국의 랜덤하우스와 펭귄 그룹이 합병되면서 ‘펭귄 랜덤 하우스’ 산하 임프린트가 되었다. 

펭귄북스의 자산 같은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해볼까? 1987년, 영국 성공회의 신부 테리 웨이트가 기독교와 이슬람교 세력의 내전이 벌어지는 레바논에서 억류되어 있던 인질 석방을 위한 활동을 하다가 무슬림 단체에 억류되어 약 5년간이나 포로생활을 했었다. 그때 감시요원들이 테리 웨이트의 인품에 감화되어 책을 구해주겠다는 호의를 베풀었는데,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펜으로 펭귄 그림을 그려주며 이 그림이 있는 책이면 뭐든 좋다고 했다. 나중에 포로에서 풀려난 뒤 이 에피소드에 대해 그는 ‘펭귄북스에서 출간한 책이라면 어떤 책이든 읽을 만하리라 생각했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나 같으면 드래곤볼의 손오공을 그렸을 것 같음)

독서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은 요즘 갑자기 웬 출판사 이야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유는 확실히 있다. 다름이 아니고 얼마 전 추석 즈음 스타벅스에서 진행했던 이벤트가 이 출판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출처: 스타벅스

우선 커피를 마시면 ‘모비 딕’을 조명하는 다섯 가지 시선의 서평이 담긴 책과 스타벅스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의 에세이를 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왜 하필 모비 딕?’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허먼멜빌의 모비 딕은 스타벅스와 깊은 관련이 있다. 모비딕에 등장하는 피쿼드호 일등항해사의 이름이 바로 ‘스타벅’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책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표지가 너무 예뻐서 보기만 해도 갖고 싶어 진다. 물론 평생 만져볼 일이 없을 것이다. INTP인 나는 그 책을 받을 수 있는 음료 조건조차도 확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귀찮음. 생각하기 싫음. 하지만 이 이벤트와 함께 발매되는 MD상품 또한 엄청나게 귀엽다. 

출처: 스타벅스

이건 그때 즈음 스타벅스에 갔다가 직접 봤기 때문에 단지 사진을 감상한 것만으로 호들갑을 떠는 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야기해두고 싶다. 다른 제품들도 괜찮았지만 이 둘은 다른 제품을 구경하다가도 계속 다시 눈이 갔다. 특히 저 녹색 텀블러는 졸다 깬 상태라면 가져다가 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펭귄북스의 시그니처 디자인을 잘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마감 퀄리티도 높고 인쇄 질감도 너무 좋다. 손으로 잡을 때마다 ‘아 너무 잘 샀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오른쪽의 보온병 스타일의 텀블러는 톨사이즈조차 담기지 않을 정도의 용량이어서 대체 어디에 쓰나 싶지만, 그래도 너무 예쁘다. 약간 높은 책장 위의 책을 꺼낼 때 밟고 올라간다던가,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스크린을 가리키는 용도로 사용하면 어떨까? 사용방법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어쨌든 예쁘니 말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한번 보고 지나치긴 했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의미 있는 이벤트의 로그를 남기는 느낌으로 포스트를 작성하는 중이다. 혹시 이 포스트를 보고 스타벅스로 뛰어가려는 당신, 이 이벤트는 이미 다 끝나서 매장에 간다 해도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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