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게 좋아요

맥북을 업그레이드하면서 가죽 파우치를 하나 샀었다. 내 가방에 랩탑을 따로 분리해 넣는 주머니만 있었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물건이었다. 새로 산 제품이니 얼마 간은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일단 결심을 했으면 바로 실행해 옮긴다. 그렇게 인터넷을 뒤져 모양새가 괜찮은 파우치를 하나 찾았고, 바로 주문을 했다. ‘이왕이면..’ 하다 보니 가격이 꽤 올라갔지만, 한 땀 한 땀 가지런하면서도 러프한 재봉선에 반해서 구매 버튼을 누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며칠 후 도착한 가죽 파우치는 홍보용 사진과의 이질감 전혀 없는 멋진 자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쪽을 보기 위해 파우치를 들었는데, 세상에나 어쩜 이렇게 무거운 거지? 마치 송아지 한 마리를 그냥 들어 올리는 느낌이었다. 송아지가 이렇게 무거웠었나?

어쨌든 며칠간 들고 다녀 봤는데, 체감상 가방의 무게가 두배는 늘어난 것 같았다. 이 파우치가 든 가방을 메고 걷고 있으면 가방의 노예 혹은 파우치의 이동수단이 되어버린 느낌으로,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데카르트의 정신적 후계자라 할 만큼 주체적인 인간인데 말이다. 그래서, 과감히 파우치를 방구석에 던져버리고, 어디선가 끼워 받았던 거지 같은 레자 슬리브를 꺼냈다. 담겨있는 모습은 초라했지만, 파우치의 무게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가방에서 꺼낼 때 파우치도 같이 열어서 한 번에 랩탑만 꺼내면 돼.’

내가 왜 이 생각을 진작 못했지?


정보: MAKR 케이스는 정말 더럽게 무겁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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