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람들에게 어떤 책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들을 때가 있는데, 저는 아무래도 ‘새 책’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새 책은 깨끗하고, 각이 살아있고, 아직은 제지공장 냄새도 나죠. 종이 냄새가 가득한 새 책은 첫 숨을 내뱉는 신생아이고, 새벽 이슬이 마르기 전의 성소聖召라니까요. 그런 이유로 서점을 좋아하고, 도서관에 가도 늘 신착도서 코너부터 훑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새책 사이를 뒤지다가 보게 된 ‘샤프펜슬에 뭔 짓을 한 거야?’라는 책…
공학도인 저자가 자신만의 시점으로 샤프펜슬의 메커니즘부터 시장에 나와있는 각 제품의 특징설명 및 리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가히 덕질의 최종장이라고 할만합니다. 개인적으로 문구류를 좋아하는 편이라 생각했지만, 이 작가에 비하면 저는 단지 ‘글을 쓸 일이 있어서 샤프펜슬을 사는 사람’ 정도일 뿐이었어요.
앞부분에는 샤프펜슬 내 부품들의 이름, 역할 설명 및 샤프펜슬의 구동 메커니즘까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며, 이후 샤프펜슬 비즈니스 업계 내 혁신을 만들어낸 오토매틱(자동 심 배출), 델가드/모굴에어(샤프심 보호), 쿠루토가(샤프심 편마모 방지), 레귤레이터(샤프심 배출량 조절)까지 하나하나 그림과 함께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건 제품, 작동구조 설명 그림까지 직접 그렸다는 거에요.(아무래도 시간을 초단위로 쪼개서 쓰는 분 같음) 소개되어 있는 약 80종의 샤프펜슬에 대한 설명을 읽다보면 분명히 하나하나 다 직접 사용해 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직업이 속기사여도 힘들 것 같은데 말이죠.
후반부에는 무려 샤프펜슬을 개조하는 방법까지 소개하고 있지만, 소개라기 보다는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자랑하고 있다고 할까? 이 정도를 대체 누가 따라 할 수 있다는 거죠? 뒤쪽으로 갈수록 열정 보여주기식의 전개에 지쳐 덮고 싶었지만, 이렇게 샤프펜슬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사람이 추천하는 샤프펜슬은 뭘까 궁금해서 끝까지 책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책을 마무리하는 ‘에필로그’까지 가야 할 줄은 몰랐네요.
여기에 그 내용을 살짝 소개해보자면,
인생 샤프(반려 샤프)
- 펜텔 비쿠냐(실사 위주)
- 자바 피닉스 2 Phoenix 2(실사+휴대 위주)
- 펜텔 케리(우아한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사라지기 전에 쟁여놓고 싶은 샤프
- 펜텔 비쿠냐
- 톰보 모노그래프 제로
- 제노 X5(0.3mm)
- 제브라 에스피나
- 톰보 오르노
참고하시길. 그런데 너무 많은 샤프펜슬 리뷰에 질려서 그런지 다시 찾아보고 구매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게 문제네요.
마지막으로
샤프 업체들이 원가절감을 위해 지우개 핀을 없애는 건 아니고, 목재 샤프가 땀을 흡수해서 그립감이 좋은 건 아니라고 합니다.
크게 궁금한 내용은 아니시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