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게 태어나서 처음 페인트칠을 하게 됐다. 엘리베이터 공사를 마친 드라이한 건물의 내벽을 칠하는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었다. 이 글은 페인트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삼일 동안 그 일을 하고 본능적으로 깨우치게 된 내용을 담았으니 진지하게 참고하지는 말자.
준비물:
퍼티, 젯소, 수성페인트 흰색/검은색, 페인트롤러, 납작붓, 세붓, 페인트 트레이, 마스킹테이프, 비닐장갑, 마스크, 귀마개, 망치, 평끌(넓은 끌) 등
벽면에 먼저 젯소를 바른 후 서너 시간 있다가 페인트칠을 하면 좋다고 한다.(뭐가 좋은지는 모름)
페인트 전문매장에서 파는 페인트 트레이에는 홈이 있다.(다이소 것에는 없음) 페인트칠을 하다가 너무 더워 짜증이 나면 페인트를 과격하게 묻히게 되는데, 이 홈이 없으면 페인트가 자신에게 튀거나 트레이 밖으로 넘치게 된다.(페인트 맛을 보고 싶다면 다이소 것을 써도 됨) 페인트를 사면서
아저씨, 이거 하나 가져도 되죠?
했더니,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고맙다고 하고 들고 왔음.
칠을 할 부분의 벽, 바닥 혹은 모서리의 마감이 매끄럽지 않은 경우 평끌을 사용해서 과감하게 직각 혹은 평면을 만들어 준다. 눈으로 보기에 마감이 엉성한 부분은 칠하기도 힘들고, 잘 칠한다 해도 깔끔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벽면의 홈, 구멍을 퍼티로 메워 매끄럽게 만들어 주면 페인트 칠하는 시간이 상당히 줄어들게 되니 참고.
대충 벽면이 준비가 됐으면 먼저 마스팅 테이프를 페인트칠의 경계 바깥쪽으로 붙인다.(이렇게 한 문장으로 잘 설명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음)
마스킹 테이프는 지면과 수평으로 붙이는 게 중요한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테이프 끝과 눈의 높이를 같게 만들며 작업할 수 있다면 당신은 프로.(옷이 되게 더러워짐)
페인트 롤러는 페인트 전문점에서 숱이 긴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한번 묻혀서 꽤 넓은 면을 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구멍을 페인트로 메우기도 편함. 마스킹테이프 위를 칠할 때는 롤러를 트레이에 벅벅 밀어서 페인트 양을 줄이는 것을 잊지 말도록!
안 그러면 수성水性의 특성과 중력의 영향으로 페인트가 테이프 안쪽으로 스며들게 된다. 테이프를 떼어낼 때 경악하고 싶지 않다면 페인트 조절은 필수다.
마스킹 부분은 아예 다이소의 싸구려 솜뭉치 돌돌이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애초에 페인트가 많이 묻지 않음)
큰 면과 마스킹 부분을 롤러로 모두 칠했다면 그 외 영역들을 붓으로 마무리한다. 이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특히 벽과 바닥의 경계 부분이 그렇다. 마스킹테이프가 잘 붙는 바닥이라면 그것을 활용하고, 그렇지 않다면 최대한 섬세하게 작업하라.(이 단계에서 전체적인 퀄리티의 차이가 발생함. 미대 졸업자라도 별 수 없음)
수성페인트는 생각보다 물로 잘 지워지니 걱정하지 말도록 하자. 문신이 아닙니다.
어쨌든, 마지막 조언을 더하자면, 인생에서 페인트칠은 피할 수 있는 한 피해 보기 바란다. 나는 앞으로 다시는 페인트칠을 하지 않을 것임.(결심) 하지만 만약 한번 더 기회가 온다면 엄청나게 잘 칠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기회라고 하니 뭔가 긍정적인 느낌이라 다른 단어로 대체하고 싶지만 떠오르지는 않음. 어쨌든 –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 절대로 내게 페인트칠 도움 요청할 생각 하지 말 것.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