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 대한 인간의 예의

익명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길고양이 학대 사진과 영상을 공유한 사건이 있었죠. 이에 성동경찰서는 동물보호법 위반의 혐의를 받는 자들의 신원 특정을 위해 카카오에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어요. 이런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다니 기가 찰 뿐이네요. 이 채팅방을 만든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에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같은 의견을 더했다는데 그나마 위안을 받습니다.

우리는 같은 종 내의 차별에 대해서는 이제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서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존중의 기대 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고요. 하지만, 지구에 인간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모든 종이 나름대로의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위의 사건처럼 생각과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 다른 종의 우위에서 군림할 수 있는 면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고구마 열개는 먹은 듯 답답해집니다. 


올해 첫 책으로 무엇을 읽을까 고민할 겨를도 없이 새해 벽두에 제게 전달된 책이 있었습니다. 바로 동물보호 시민단체와 국회의원실에서 동물 정책 업무를 담당하셨고, 현재 지방자치단체에서 동물보호 업무를 담당하고 계시는 이소영 씨의 ‘동물에 대한 인간의 예의’였죠. 작년 말, 저의 완소 뉴스레터에서 준비한 읽을만한 책 코너에서 제목이 마음에 들어 무심코 신청 버튼을 눌렀는데 당첨이 되어 버린 거예요.

평범한 표지에 정직한 제목으로, 그다지 특별하게 시선을 끌지는 못하는 책. 하지만, 이 동물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동물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걷고 싶은 글쓴이의 진심에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중심을 잡기 힘들고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인데, 고고한 학처럼 중심을 벗어나지 않고 주제를 균형 있게 바라보고 있는 것도 특이했죠. 한마디로 교양이 철철 넘친다니까요?

작가는 세상의 변화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면 더 좋겠죠.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공론화한다면,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답이 찾아질 수 있을 겁니다.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질문’은 객관화되고 일반화되어있어야겠죠? 저자는 사람들이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에’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작가가 동물보호 시민단체, 국회의원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며 만났던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잔잔한 작가의 목소리를 독자에게 조곤조곤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용하지만 힘 있게 말이죠. 읽는 내내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어’ 하게 되었다면 이 책의 무게감이 조금은 전달될 수 있을까요? 열다섯 살이 된 그녀의 반려견 에피소드를 읽을 때는 빨리 집에 들어가 ‘망고(우리 집 반려견입니다)’를 보고 싶어서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대로 동물보호법이 정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국가 재정으로 동물 보건소가 꼭 운영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면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동물병원 비용 걱정 좀 덜하고 반려견과 행복하게 살아가실 수 있겠죠?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지금까지 냈던 세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동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그리고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분들께, 올해 처음으로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 ‘동물에 대한 인간의 예의’입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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