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와 렌트카

두브로브니크의 유니 렌터카 사무소는 비스 호텔의 로비에 있다. 호텔의 로비에 다른 비즈니스의 사무실이 있는 것도 좀 신기하긴 한데, 더 놀라운 건 사무실이 잠겨있었다는 거다. 우리가 렌터카를 반납하러 갔을 때는 오후 세시쯤이었고, 오미스부터 서너 시간을 달려왔기 때문에 꽤 피곤한 상태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에 렌터카를 반납하러 오는 사람들이면 대부분 자그레브부터 아래쪽으로 며칠을 달려 내려왔을 테니 꽤 지친 상태일 거다. 이곳은 성곽 안쪽의 올드시티 관람이 목적이기 때문에 더 이상 렌터카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관광객은 대부분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렌터카를 반납한다.

어쨌든 반납받을 직원이 없기 때문에 바깥에서 기다리려고 호텔 밖으로 나왔는데, 흰 모자를 쓰고 흰 티에 반바지를 입은 한국 사람이 서 있었다. 관광객 말고는 딱히 다른 롤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 물론 우리도 그랬음 – 꽤 화가 났다는 것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아마도 렌터카를 반납하러 온 사람일 거다.

반납을 해야 하는데 직원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사무실 앞에 전화번호가 붙어 있는데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아요. 이따위로 서비스를 하려면 차라리 때려치우는 게 낫겠네

우리와 말하면서, 혼잣말도 하면서, 하여간 분노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던 이유는 날씨도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도 반납 시간이 오후 다섯 시였기 때문이다. 다섯 시였다면 분명히 조금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프리드먼과 로젠먼이 제시한 ‘A형 성격’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늘 시간에 쫓기고, 결과를 빨리 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느릿함을 답답하게 생각한다. 이 사람들이 가장 화를 잘 내는 순간은 바로 ‘누군가 자기 시간을 빼앗을 때’이다. 지금 상황이라면 ‘빨리 렌터카를 반납하고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막고 있을 때’ 정도 일까? 흥미로운 건, 이런 A형 성격의 사람이 스트레스로 인해 관상동맥 심혈관 질환에 걸릴 위험은 일반사람의 두 배가 넘는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일할 때는 자본주의에 의해 길들여진 ‘A형 성격’으로 산다.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업무모드를 벗어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A형 성격’이 MBTI의 J에 가깝다면, 나는 그것과 정 반대편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P인 사람인 것이다. 관상동맥 심혈관 질환의 위험은 적지만 인생을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건 좀 힘들지도 모른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러고 보면 흰 모자를 쓴 이 관광객은 지금 심결환 질환의 위험이 꽤 높아진 상태일 것이다. 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계속 대화로 긴장을 풀어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부담스럽긴 했지만 – 나는 또 극 I 이기도 함 – 렌터카 반납이 몇 시냐고 물어봤다. 기존 상황과 연결되는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네, 저 오후 일곱 시요

..

아니 도대체 왜 화가 난거지? 유니렌트의 직원이 ‘A형 성격’이라면 이 상황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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