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멘토 브루어스

오랜만에 인스타를 들어갔다가 모멘트 브루어스의 영업종료 소식을 보게 되었다. 모멘토 브루어스는 성수역 근처에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다.

주말마다 자전거로 강변을 들어설 때는 늘 ‘아주 먼 곳까지 달려야지’ 했다. 하지만 대부분 서울숲 근처에서 그 마음을 접곤 했는데,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다음은 이태원 근처까지는 달려야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릴 만큼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지는 않나 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점점 서울숲 근처에 익숙해졌다. 그 골목골목을 다니며 근처의 모든 매장을 눈에 익히게 되었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님.

그 무렵 서울숲 가장자리에서 마주했던 모멘토 브루어스는 늘 앉을자리 없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 근처의 핫플이었다. 원두별 특징이 인쇄된 하드보드지와 함께 전달받은 커피는 매번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줬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카페가 있던 자리에서 다른 음식점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거. 인생은 늘 그랬다. 그대로일 것만 같은 익숙한 장면은 어느새 한 구석이 움푹 파여버리고, 이내 다른 부분이 어두워져 버린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처음과는 다른 장면이 되어버린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오래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폭풍에 날아가버린 도로시의 집처럼 갑자기 사라져 버린 모멘토 브루어스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던 것 같다.(그 친구는 커피를 좋아하는 친구였음)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친구는 에르퀼 푸아로 탐정 같은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꺼내어 한참 검색을 해댔다. 그리고는 내게 메신저로 링크 하나를 보내준다. 터치해 보니 ‘모멘토 브루어스’의 위치 링크였다. 기존 장소가 아닌 성수역 근처에 동일한 이름의 카페가 있었구나. 친구는 조금 더 검색을 해보더니 이름만 같은 카페가 아니라 그 카페가 자리를 옮긴 것이라며, 내게 증거라며 모멘토 브루어스의 인스타를 보여 줬다. 증거까지는 필요 없었는데…

카페는 이전보다 한적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서 조금은 더 편하게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의 고향 같은 카페가 오늘 영업을 종료한다고 했다. 인스타에서 그 소식을 듣고는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기억을 도둑맞듯 이곳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을 나설 때 불을 모두 끄고, 현관을 정리하고, 문을 닫고, 자동으로 잠기는 소리까지 확인하듯, 꼭 가서 모두 다 눈에 담고 와야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마주할 수 있었던 포스, 그 왼쪽의 디저트 진열대, 자주 앉았던 스툴, 건물 앞의 테라스 테이블과 바람에 하늘거리던 접란까지도 말이다.

어제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마지막 힘까지 쥐어짠 여름 날씨다. 이별하기에 좋은 날. 마무리는 화려할수록 기억에 남을 테니 말이다. 올해 마지막 여름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천천히 카페로 출발해 볼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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