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즈음, 선미의 디지털 싱글 7집이 발매되었었다. 그 앨범에는 ‘열이 올라요’와 그녀의 자작곡인 ‘풋사랑’ 두 곡이 담겨 있었고, 그중 ‘열이 올라요’는 주간차트 탑 100에 10주 차 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풋사랑’은 차트인 하지 못한 채 그녀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버렸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레트로 향 물씬 풍기는 ‘풋사랑’을 더 좋아한다. 가을의 끝자락에 바람이라도 분다면, 그때 걸고 싶은 곡들 안에서도 이 곡은 상위권이다.
얼마 전 그녀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 곡의 밴드 버전 클립을 보게 되었는데, 이 클립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도입부부터 탱글탱글하게 달리는 베이스다. 아티스트는 아무래도 자신이 애착을 가지고 있는 악기의 채널 게인을 높일 수밖에 없으니까.(선미는 원더걸스 때 베이스를 담당) 게다가 선미의 중저음 보컬은 이인삼각 달리기를 하듯 베이스와 너무 잘 어울리는 것도 있다.
슈퍼밴드에서 양장 세민의 5현 베이스 솔로는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데, 여기에 악기 한두 개만 더 해도 밴드 소리는 충분할 것만 같다. 밴드는 다들 적당한 실력으로 쿵짝쿵짝 어설프게 합이 맞다 안 맞다 하는 맛인데, 이런 멤버가 끼어 있으면 늘 죄를 지은 기분으로 눈치만 보게 되지 않을까? 기타와는 또 다르게 베이스의 경우 속주가 멋져 보이기는 쉽지 않은데, 굵은 현 때문에 선예도가 낮아 스트로크나 태핑이 많아지면 지저분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이스의 아이덴티티인 양감과 그루브도 희미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 정도로 연주할 수 있다니…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런 관점에서 밴드의 합과 절제의 레퍼런스 격인 곡을 소개해보자면, 바로 윤종신의 ‘이별의 온도’가 그렇다. 어느 악기도 – 심지어는 배두나의 연기도 – 절대 보컬 위쪽으로 넘어 올라오지 않으며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로 성실하게 음과 비트를 짚어주고 있다. 절대 기울지 않는 천칭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가장 칭찬하고 싶은 건 역시 이상순의 리드 기타로, 보컬과 투탑을 이루고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 포지션임에도 극강의 절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곡을 소개하는 이유는 역시 곡 백그라운드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윤상의 베이스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윤상은 베이스를 치고 있을 때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내공이 깊은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리고, 그렇게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실속 없는 사람들인 경우도 꽤 많다. 아는 것 없이 고집만 잔뜩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으면 시간이 아까워 견딜 수가 없으니까. 내가 예술의 영역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실력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연주를, 작품을 감상하고 있으면 – 바지 주머니 속의 송곳이 밖으로 튀어나오듯 – 바로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대화 한번 안 해보고도 의심 없이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