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찾아 듣는 음악이 몇 개 있는데, Paris Match의 ‘Alison’이 그중 하나다.
얼마 동안 지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는 가을이었지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시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그곳 토박이라는 운전기사는 이때 비가 내리는 건 처음 본다고 했다. 그리고, 이곳의 우기는 겨울이지만 최근 십 년 동안 겨울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해 겨울에는 비가 꽤 많이 왔고, Alison 도입부의 스네어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덕분에 샌프란시스코는 런던(머물렀던 일주일 내내 비가 왔었음)과 함께 기억 속에 비가 오는 장면이 비교적 선명히 떠오르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인생이라는 건 늘 예측 불가다.
나는 보통 토요일 오전에 이런저런 집안일을 했는데, 그때 비가 내리면 참 난처했다. 그중 빨래를 못하는 게 가장 안타까웠다. 빨래를 안 하면 코인 세탁소의 건조기에 몸을 들이밀어 바짝 마른 빨래의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세탁기가 도는 동안 몇 블록 떨어진 Noah’s Bagles에서 좋아하는 연어 베이글 샌드위치도 먹을 수 없다. 그때는 그냥 내 작은 스튜디오의 창문을 조금 밀어 올리고 우중충한 창 밖을 내다보며 ‘Alison’을 들었다.
‘Alison’은 담백한 피아노와 베이스 위로 흐르는 미즈노 마리의 보컬이 일품인 미디엄 템포의 세련된 재즈곡이다. 이곡을 들으면 마치 미즈노 마리가 내게 업힌 상태로 귀 뒤쪽에서 노래하는 것 같은데,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그녀를 내가 업어 키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업는다고 하니 갑자기 대학교 때 술에 취한 후배를 업어 데려다주던 기억이 난다. 그날도 가랑비가 내렸는데, 후배가 너무 무거워서 마치 바다표범을 등에 얹고 걷는 기분이었다. 물론 바다표범을 업어 본 적은 없지만, 그 느낌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가만히만 있어도 무거운데 그놈이 계속 뒤척거려서 더 힘들었다. 잠시 내려놓고 등짝에 니킥을 날려 정신을 잃게 만든 후 업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끔 욱욱 거리다가 ‘형. 나 잠깐만…’ 할 때면 기겁을 하고 길에 내려줬는데, 다시 둘러업는 게 엄청나게 고통스러웠다. 그때 그가 미즈노 마리처럼 내 귀에 노래를 불러줬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게 그녀였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다른 이야기지만 하늘이 시커멓게 장대비가 내리는 날에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Rain’도 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