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즉다사貧則多事

앞으로 한 달은 정신이 하나도 없을 거다

인생이란 게 늘 한가하게만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 바쁘거나 일이 넘쳐도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대부분 큰 문제없이 잘 지나갔다. 물론 그 당시에는 꽤 힘들었거나, 생각지 않았던 결과에 당황했던 적도 있었겠지. 하지만 해야 할 일들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미리 걱정했던 적은 없었다. 아마 생각을 깊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첨예하게 쌓여 있는데, 그 태스크나 대상들도 모두 다르다. 이런 경우는 짧지 않은 인생에서도 좀처럼 만나본 적이 없다. ‘제대로 다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혼자 할 수 있는 건 묵묵히 책상 앞에 앉아 방법을 찾아내면 되지만, 각자의 입장이 있는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조율해야 하는 일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주의 깊게 살피며 신경을 써야 한다.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일이다. 

계속 켜켜이 쌓여가는 일들을 테트리스 쌓듯 정리하다가 어느 순간 그 작업을 멈춰버리고 말았다. 해야 할 일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게 되는 게 불편했다. 그다음부터는 캘린더에 태스크를 적기만 하고 차안대遮眼帶를 한 말처럼 오늘까지 해야 할 일만 보기로 했다.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오르듯, 

앞 전우의 뒤꿈치를 보며 행군을 하듯,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듯,

그렇게 가다 보면 10월 중순이 오겠지. 한 달 정도는 언제나 금방 지나가니 말이다. 모든 것이 아주 잘 처리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모든 일도 – 심지어는 여름도 – 끝나있을 것이다. 4주 후면 파열된 발목의 인대도 나아질 거라 했다. 

그러고 보면 이번 가을은 꽤 괜찮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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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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