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는 있었다고
오늘 스타벅스에서 새 모델들이 발매된다는 걸 말이야. 새벽에 우연히 자주 가는 게시판에서 영플레이모빌 수십 개를 담은 종이가방 속을 올린 인증샷을 봤거든. 딱히 ‘사야지!’는 물론 아니었어. 아침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스타벅스를 들러서 구경은 해봐야지 한 거지. 그 인증샷에서는 박스 옆면 밖에는 볼 수가 없어서 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했거든. 하지만, 오래된 시계 속 톱니바퀴의 이가 어긋나듯 – 티틱 – 그렇게 되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
우선 이시영의 유튜브 채널에 시간 가는 줄 몰랐어. 너무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거든. 그래도 그때까진 괜찮았다? 장갑을 놓고 나오지만 않았으면 난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티소믈리에 로이’를 구매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동네의 스타벅스는, 아침엔 그야말로 사람이 없거든.
그렇게 허겁지겁 지하철로 직행하고는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하루를 뒤로하고, 집 근처 지하철 역을 나와 어둑어둑해진 길을 걸어갈 때까지도 까맣게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사람이 적은 길을 가고 싶은 거야. 그런 날 있잖아. 사람에 하도 치여서 더 이상은 쇼윈도 건너편의 점원조차 마주치기 싫은 날. 오늘이 딱 그랬어. 그래서, 건널목을 건너 오른쪽으로 꺾어 어둠뿐인 인도로 들어섰지. 그 길엔 저녁에 사람이 없거든. 왜인지는 나도 몰라. 그냥 늘 그래.
그 인도의 끝에서 초등학교 정문을 마주하기 직전에 왼쪽을 보면 스타벅스가 있어. 매장이 작은 건 아니지만 화단 뒤쪽으로 쑥 들어가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가다 보면 매장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치게 된다고. 그런데, 오늘은 돌아본 거야. 그 녹색 스타벅스 로고를 마주하니까 바로 생각이 난거지. 스타벅스 스페셜 에디션 플레이모빌 피규어가 말이야.
‘손님, 지금은 ‘바리스타 조이’와 ‘커피 마스터 준’ 밖에 없어요.’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영 플레이 모빌’인 것 밖에 몰랐다고. 그렇게 나이와 이름까지 디테일하게 설정해 둔 장난감일 줄이야. 포스 앞에는 ‘바리스타 조이’ 박스가 수북이 쌓여 있었어. 인기가 어지간히 없었던 모양이지?
‘커피 마스터 준도 있긴 한가요? 이 앞에는 없는데…’
점원은 포스 밑을 더듬어 커피 마스터 준 상자 하나를 건네줬어.
‘여기 있어요.’
검은색 앞치마를 한 커피 마스터 준은 바리스타라기보다는 소방수 같았어.
‘오늘 또 뭐가 발매됐는데요?’
‘티소믈리에 로이는 다 팔렸거든요. 손님.’
조금 전만 해도 전혀 알지 못했던 이름이었어. ‘로이’라니.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치 내가 하루 종일 티소믈리에 로이를 갖고 싶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야. 참 이상하지.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다. 로이는 그런 존재인 거지. 그러다가 다시 포스 앞의 ‘바리스타 조이’를 보게 됐어.
‘조이는 왜 이렇게 많아요?’
‘조이는 지난주에 발매되었는데, 물량이 많이 들어왔어요.’
‘잘 안 팔린 건 아니고요?’
침묵.
왠지 바리스타 조이가 불쌍했어. 밉상이거나 이상하게 생기지도 않았거든. 가장 전형적인 녹색 에이프런의 스타벅스 바리스타라니까? 그러고 보니 나를 응대하고 있는 점원과 복장이 같았어. 괜히 그 점원도 우울해 보였다. 그녀의 눈이 마치 ‘사주세요. 제발… 왜요? 말단 점원은 싫은 거예요?’ 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어. 나는 결심을 하고는 천천히 이야기했지.
‘바리스타 조이 하나 주세요.’
‘네!’
그녀가 정말로 경쾌하게 대답을 했었던 건지, 아니면 내 착각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어쨌든 집으로 와서 박스를 뜯고, 대충 설정샷 몇 개를 찍었다. 이십 분 정도 걸렸는데, 고릴라 위에 바다표범을 균형 잡아 올리는데 십오 분 넘게 걸렸던 것 같아. ‘대체 내가 병신처럼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도 십 분은 했겠네. 그리고는 바리스타 조이를 책상 서랍에 집어넣어 버렸다.
대체 이걸 왜 산 거지? 게다가, 밤에 커피를 샀으니 오늘도 잠은 다 잔 거야. 내가 그렇지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