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누군가가 ‘Extremely Loud & Incredibly Close’란 책을 추천해줬었다. 미국에 있을 때 같이 공부했던 친구였던 것 같기도 하고, 뉴욕에서 변호사를 하던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나는 아마존에서 이 책을 구입했었고, 몇 번 읽으려 시도를 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도입부 소년의 정신없는 주절거림이 끝까지 이어질 것만 같아서였을까? 아니면, 영어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나는 이 소설의 소재조차 모른 채 책을 덮어두고는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소설이에요
요즘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읽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삶이 메인스트림이 되어버린지도 꽤 오래됐으니까. 쪽글 한 바닥 읽는 것도 버거운 시대. 그런데, 함께 일하는 친구와 점심을 먹다가 책을 소개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은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Extremely Loud & Incredibly Close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었다. 나는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그 번역서를 구입했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독서 버디의 추천을 흘려버릴 수는 없는 거니까.
이 소설은 ‘조너선 새프런 포어’라는 철학과 문학을 전공한 작가의 두 번째 작품으로, 9.11 사건의 피해자인 오스카라는 소년과 그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작가는 문장 외에도 여러 2차원적인 시각적 요소를 활용하여 고객과 소통하려 하는데, 그런 장치들은 탄탄한 작가적 기본기와 시너지를 내며 신선함을 더해준다. 디테일한 감성과 상상력 또한 남다른데, 작가의 그런 능력은 오스카의 대사를 통해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아빠가 많이 보고 싶어요. 오 버.” “나도 그래. 오버.” “한시도 잊을 수가 없어요. 오버” “나도 한 시도 잊을 수 없단다. 오버.” 전화에 얽힌 일을 할머니에게 말할 수 없었으니, 할머니를 비롯한 그 누구보다도 더 내가 아빠를 그리워한 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 비밀은 내 속에 뻥 뚫려 모든 행복한 일들을 빨아들이는 구멍이었다.
오스카는 아버지를 9.11 테러로 잃게 되었고, 그 사건은 그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긴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그 트라우마 안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9.11 테러를 드라이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건의 옳고 그름보다는 그 상황 안에서 남겨진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난 애나에게 마지막으로 키스한 적이 있고, 우리 부모님을 마지막으로 보았고, 마지막으로 얘기를 했지, 왜 모든 것을 마지막처럼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까, 가장 한스러운 것은 미래를 너무 많이 믿었다는 거야.
지능이 있고 가치 판단이 가능한 인류에게 죽음은, 인류와 지구상의 다른 생물을 구분 짓는 형이상학적 현상이다. 인류가 다른 생물보다 더 인간답고, 더 아름답고, 더 고귀한 이유는 자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스카의 할아버지도 오스카처럼 2차 대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그 트라우마 안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다. 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뒤로한 채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물론 그렇죠. 하지만 그럼 인력은 왜 있는 거예요?” “인력이 왜 있냐니, 그게 무슨 소리냐?” “이유가 뭐냐고요?” “이유가 꼭 있어야 한다고 누가 그러던?”
이 소설에서 제시하는 치유의 방법은 소통과 관계였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의지하고, 도우며 주변 사람들의 문제를 돕고, 다시 그들에게 나의 상처를 치유받는 것.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설명보다는 따뜻한 허그가 때로는 더 큰 위로가 되는 법이다.
한숨에 읽어버리기에는 조금 길지만 그래도 꼭 추천하고 싶은 따뜻한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