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이맘때 즈음이었을 거다. 본부 전체 회식자리였고, 2차가 끝나갈 때 즈음 우리 파트는 나, 다른 파트도 한 명, 나머지 파트는 파트원 전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술을 잘 마시고 싶었지만 그게 잘 안 됐다. 대학 때부터 맥주든 소주든 한잔만 마시면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덕분에 술자리에서 도망치는 데에는 거의 고수급이었다. 눈치 또한 대단해서 누군가가 파도(모두가 돌아가면서 자기가 든 잔을 모두 마셔야 하는 제안)를 외치려는 걸 귀신같이 알아채고 피했다. 그건 카멜레온의 위장색 같은 나만의 생존능력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술자리가 잦아져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최초 능력치가 너무 낮아 남들이 보기에 나는 그냥 늘 술 못 마시는 사람이었다.
그 회식자리에서 나는 정말 파트를 대표한다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이미 너무 졸린 상황, 다행히 2차 술자리는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듯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천천히 사람들과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바깥에 먼저 나간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3차는 어디로 가지?’
미쳤네. 2024년에 3차가 있을 수 있나? 물론 대한민국 내에서 아주 소멸될 수는 없겠지만, 하필 지금이라고? 시대를 역행하는 사람들은 소수의견은 듣지도 않은 채 삼삼오오 순댓국 집으로 향한다. 사실 의견을 들을 필요도 없었겠지. 3차에 가지 않을 사람들은 그냥 집에 가면 되니까. 하지만 파트를 대신하여 남아있는 내게 그런 선택은 불명예 퇴전이다. ‘좀 명예롭게 보내주면 안 되겠니?’ 공허하게 마음속으로 외쳐보지만 사람들은 이미 한참 앞을 걷고 있었다.
수육 집이었나? 기억도 잘 안남. 나는 3차에 합류하긴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젠틀하게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내 옆에, 혹은 앞에 누가 있었는지 조차 기억이 안 난다. 아니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냥 너무너무 졸렸다. 문 밖으로 나가면 바로 집 현관 앞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그런데,
‘아, 집에 가야 하는데…’
나처럼 외로운 파이터 롤을 수행하고 있던 다른 파트 직원의 말이 들려왔다. 이 상황을 일타쌍피, 일석이조로 극복할 수 있는 놀라운 선물이다.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이다. 기름이 발라져 있을지라도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음.
‘이런, 괜찮아?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일어서 봐. 어머, 몸도 잘 못 가누네. 내가 택시 태워줘야겠다. 우리 두 파트는 먼저 일어나 볼게요.’
우리 파트가 단독 꼴찌는 아닌 데다가, 나는 힘든 사람을 데려다주는 친절한 사람. 게다가 한 파트원들끼리 오붓하게 내부 이야기를 하고 싶을 수도 있으니 자리를 슬쩍 양보해 주는 눈치까지 지녔다. 애초에 승부라고 생각한 건 나뿐이었을 수도 있어. 일반적으로 술자리가 전쟁터는 아니잖아? 즐기는 자리다.
‘아쉽네. 다음에는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고!’
마지막 대사는 하지 말걸. 어쨌든 그 친구를 택시 태워 보내고, 시계를 보니 아직 열시도 안 됐다. 나도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는 바로 잠이 들어버렸고,
그날 밤 계엄이 발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