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24-07-06

‘가장 최근에 행복했던 적이 언제였어요?’

궁금했다. 결과적으로는 생존에 유리한 사건이었을 테니 말이다. 서은국교수는 ‘행복의 기원’에서 몸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도파민을 배포한다고 했다. 생존에 유리한 일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나갈 수 있도록 길을 들이기 위해서 말이다.

한 친구는 주말에 회전초밥집을 가서 레일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초밥들을 볼 때 행복감을 느꼈다고 했다. 한 친구는 자신의 아이가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걸 보며 행복했다고 했다. 식사를 하는 것은 하루하루 생존하는 것을 돕고, 아이를 보며 행복감을 느끼는 건 생식을 위한 긍정적 시그널을 만들어 낸다. 그의 이론은 형이상학적인 마음가짐만 이야기해 대는 다른 행복에 대한 책들보다 논리적이었다. 마음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내게 같은 질문을 했다. 물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답은 확실했다.

‘어제저녁 온라인에서 게임을 구매했는데 실행을 해보려 하니 70기가나 되는 파일을 다운로드해야 되더라고요. 꽤 오래 기다려야 했는데, 들여다보고 있다가 잠이 들었지 뭐예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운이 다 받아져서 실행 버튼이 반짝거리고 있더라고요. 그게 정말 너무 행복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이 내용을 서은국교수에게 보내줘야 하나 하게 되었다는 거.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교수님.


한 친구가 일하는 건물 건너편에  자신의 친구 아버님께서 커피숍을 오픈하셨다고 했다. 그 이후로 같이 커피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을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이 다녀오겠다며 손을 든다. 그리고는 매번 그 커피숍에서 커피와 간식을 사 오는 거다. 의리가 넘치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짐.


그걸 테스트하려면 이렇게 일주일이 넘게 걸리는 큰 작업을 해야 하는데, 결과가 안 좋으면 그게 의미 없는 일이 되잖아요

라고 하는 개발자. 물론 그 말이 맞지만 그렇다고 그 길은 건너뛴다? 짜증이 나서 일어나면서 ‘내일 아침까지 내가 작업해서 줄 테니 기다려요.’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크게 후회를 했다. 일도 손에 안 잡혔다. 내가 대체 왜 욱한 거지? 심심했나? 퇴근해서 책상 앞에 앉았는데 그 일이 너무 하기 싫었다. 개발자도 그랬겠지. 내일 아침에 ‘설마 내가 어제 별생각 없이 이야기한 걸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죠? 당연히 농담이지.’하면 그는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최근 이렇게 뭔가 싫은 걸 억지로 한 적이 있었나? 분명히 없다. 그건 확실하다. 나는 대학을 졸업 한 이후로 하기 싫은 건 하지 않는다.(하기 싫은 게 공부 밖에 없긴 했음) 어쨌든 내 남은 인생은 아파테이아를 핵심 미덕으로 생각하며 스토아 철학자처럼 살아갈 테다. 절대 이런 일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자업자득으로 한 잠도 못 자고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음.


최근 애플 TV에서 장장 9주 동안 참을성 있게 ‘Dark Matter’라는 드라마를 봤다. 9주 전이면 양자역학에 관심이 있을 때였기 때문에 고민 없이 릴리즈 된 시리즈 1편을 시청했었다. 다중우주/멀티버스 관련 드라마였는데 처음엔 꽤 흥미로웠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세 번의 큰 위기가 있었고, 그걸 이야기하려 하니 이 드라마를 보실 분이라면 아래 내용을 건너뛰시길.

첫 번째는 모든 멀티버스 세상마다 그 검은 철제 게이트가 존재한다는 거다. 다크버전의 주인공이 살던 세상의 것은 그가 만들었겠지만, 다른 세상에는 대체 그게 왜 있냐고? 두 번째는 다른 멀티버스로 진입할 때 어떤 법칙에 의해 원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설정인데, 그 원칙이란 게 머릿속으로 가고 싶은 곳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라는 거. 아예 기도를 하지 그랬수? 마지막은 다른 멀티버스에서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오는 주인공이 수백 명이라는 건데, 다시 돌아오기 위해 중첩된 경험을 할 때마다 다른 버전의 자신들과 기억이 겹쳐 여러 명이 된다는 뭔가 이상한 설정이다. 양자역학적 근거를 가지고 만들어낸 설정일 수도 있겠지만(드라마 내에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음) 마지막에 다시 가족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 할 거 아냐? 다른 수백 명의 자신은 모두 불행해지는 찜찜한 결말은 대체 뭐냐고. 여기서 짜증 나서 이제 더 이상 안 봐야겠다고 결심했는데, 마지막 회였다는 거. 그래서 본의 아니게 다 봤음.


독서 강의가 있길래 신청을 했는데 당첨이 되어 공짜로 책이 배달되어 왔다.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과학자여서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책 중 이것을 선택했었다. 그리고 책이 도착한 지 삼주가 지났다. 주말에 카페에 갈 때마다 바리바리 들고 갔는데 아직 한 페이지도 안 읽었음. 진심 크고 무거운데 계속 들고나가는 내가 기특하기도 하면서, 가방에서 한 번도 꺼내지 않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다. 하지만 들고나가는 내 자신이 기특한 게 훨씬 더 크니 이러고 있는 거겠지? 오늘도 가지고 나왔지만 꺼내지 않았습니다.(한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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