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는 늘 평화롭다

서점에만 가면 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구경하는 버릇 때문에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한 적이 많았다. 사실 서점처럼 재밌는 곳이 흔하지는 않으니까. 마음이 차분해지는 향도 좋고, 새책 냄새도 실컷 맡을 수 있고, 책에 질리면 문구 매장에서 만년필이나 노트를 구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해야 할 일들을 다 하려면 서점에서 할 일만 딱 하고 나와야 했다. 

나는 교보문고 앱을 켜고 문명인의 필득 기술인 바로드림으로 벼르고 있던 호원숙 님(박완서의 딸)의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주문하고는(지난 1월 22일은 고 박완서 님의 10주기이기도 했음) 책을 받기 위해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 들어서자마자 – 차안대遮眼帶를 한 경주마처럼 – 바로드림 코너로 직진해서 책을 받아 출구 쪽으로 나오는데, 갑자기 음악기자인 친구와 이름이 비슷한 작가의 음악 관련 서적이 눈에 들어왔다. 그 이후로 목표는 완전히 잊고 주변의 책들을 한 시간 반 동안 구경하고 말았는데, 나는 정말 왜 이러는 걸까?


잠실 교보를 바라보고 오른편에 있는 스타벅스는 누가 봐도 잠실에 있는 매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손님이 없는 편이다. 맞은편 월드타워의 뒤쪽에도 큰 스타벅스 매장이 두 개나 있는데, 그 매장들은 언제나 코로나 균 교환소 같은 느낌으로 사람들이 꽉 차있는데 말이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이 매장을 좋아하는데,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있으면 닥터 스트레인저의 슬링 링으로 만든 게이트웨이로 타임스퀘어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든다.  

커피를 주문하고는 자리에 앉아 지금 막 사온 책을 꺼냈는데, 너무 얇아서 조금 실망해 버렸다. 물론 그 짧은 지면 안에서 엄청난 이야기들이 전개되었다가 불꽃처럼 마무리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물리적 한계라는 게 있으니까. 서울에서 출발했다면 경기도 광주 정도에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제주도까지는 꿈도 못 꿀 것이다. 그렇다고 제주도까지 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미세먼지가 많아서 그런지 왠지 공기가 포근하게 느껴지는 그런 일요일 오후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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