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집에 게임기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큰맘 먹고 중고장터에 내어 놓기로 맘을 먹었다. 휴일 아침 카리나의 ‘사랑의 이름으로!’를 들으며 차근차근 사진을 찍어 정성껏 올렸다. 안 팔렸으면 좋겠네. 아니 팔아야 한다! 사실 게임을 그리 많이 하는 편도 아님. 어쨌든 그렇게 중고장터에 올려두고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울리는 알람. 구매자는 자신은 학생인데 게임을 너무 좋아한다고 한다. 전혀 궁금하지 않은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는 대화.

그는 내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서 측은지심을 일으켜 엄청난 디스카운트를 해주길 바라고 있겠지만, 학생이라면 게임보다는 공부나 열심히 했으면 하는 생각이 더 큰데 어쩌나? 복잡한 국제정세와 뜬금없이 급발전한 인공지능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우리의 미래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학생이 게임이나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거다. 오히려 더 비싸게 받고 싶어 졌음. 

‘사진에 보면 약간 모서리에 흠집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깎아줘야 함. 게임을 할 때마다 그 흠집을 보는 건 고역일 테니 말이다. 몇 번의 대화가 더 왔다 갔다 하고는 거래 약속을 잡았다.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하고는 시간에 맞춰 천천히 약속장소로 향한다. 집 앞으로 오라고 했어야 했다. 물건을 팔고 집으로 가는 길은 더욱더 쓸쓸할 테니 말이다. 거래를 하고 나면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게임기를 마주할 수 없다. 흠집이 없는 새것을 다시 사야지. 아니다. 그러면 안 된다! 

구매자에게 ‘반바지에 모자를 쓰고 있다’는 메시지가 왔다. 모자를 쓰고 있는 반바지를 상상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중학생 즈음 되어 보이는 키 작은 아이가 있다. 모자든 반바지든 그 아이 하나밖에 없음. 아이는 건네준 게임기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현금으로 돈을 건넨다. 누군가는 삥을 뜯는다고 오해하겠지? 그래도 싸다. 어쨌든 게임기를 손에 꼭 쥐고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저 게임기가 처음 배송되어 왔을 때 저런 표정이었을 거다. 나는 구매자가 예의 바르면 덤으로 주려고 가져온 게임을 내밀었다. 

‘그냥 주시는 거예요?’

물론이다. 

‘그거 진짜 재밌다?’

게임기에 팩을 집어넣으며 걸어가는 꼬마의 뒷모습에 대고 중얼거렸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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