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과 뇌파

내가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주변 사람들까지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최근 가만히 관찰해보면 이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뭔가 집중력 부족에 대응하는 장점을 발견해보려고 고민할수록, 이런 상태로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게 기적이라는 생각 밖에는 안 드니까. 

예를 들어 보자면, 

책상 정리를 하다가 며칠 전 읽다 올려둔 책이 눈에 들어오면, 갑자기 대여 기간이 다가오는 전자책을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아니 왜?) 전자책 앱을 구동시키는 동안 인터넷의 알뜰 구매 페이지를 구경하다가, 괜찮은 무선 헤드폰 정보를 보고는 바로 인터넷 쇼핑몰로 이동을 한다. 구매 페이지를 열어 둔 상태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는 헤드폰과의 비교 리뷰를 검색하는데, 그때 내 헤드폰을 꺼내어 구동시켜 보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다시 양 헤드폰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에 대한 비교 리뷰를 보다 보니 갑자기 잡음 제거의 원리가 궁금해진다. 여러 키워드를 조합하여 역파장으로 소음을 상쇄시키는 메커니즘에 대한 글을 찾아 읽다가 해당 기능의 최초 개발 의뢰자가 루프한자 항공사라는 것을 알게 되고, 연관 검색으로 1974년도에 발생했던 루프한자 LH540 기체의 추락사고를 접하게 된다. 이때 정비 부주의로 추락사고의 원인이 되었다는 공압시스템의 작동원리에 대해 찾아보다가 아예 공기압 활용에 대한 역사까지 샅샅이 찾아 읽는다. 다시 쇼핑몰을 보니 그동안 특가 헤드폰은 완판이 되어버려 구매를 포기하고, 다시 전자책을 몇 장 읽다 보니 – 대여 만료 기간은 다가오지만 – 그다지 재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결국 덮어 버리고 만다는 건데…


얼마 전 TED에서 뇌파를 읽는 헤드셋에 대한 소개를 본 적이 있는데 이 헤드셋은 뇌파의 감지로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물론 뇌파를 감지하는 도구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해당 정보를 판독하는 알고리즘은 인간이 코딩해낼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으니까.

이 영상에서는 그런 일반화가 불가능했던 이유가 뇌의 주름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은 지문처럼 사람마다 물리적인 차이가 있고, 그로 인해 뇌파의 전기적 신호가 같다고 해도 모두에게 같은 의미라고 정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정 사용자의 뇌파 신호만으로 한정하여 학습시키면 적어도 그에게만은 확실히 적용 가능한 모델을 만들 수 있고, 결국 생각 만으로 사물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진행자는 설명을 마친 후, 이전에 해당 제품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사용자를 통해 시연을 시작했다. 그는 피실험자에게 어떤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 후 그때의 뇌파를 수집하여 학습을 시킨다. 만약 다시 사용자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비슷한 뇌파가 발생될 것이고, 실험기기는 그 뇌파를 기존 학습 정보와 대조하여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왠지 유독 ‘사라진다’라는 생각을 학습시킬 때만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데, 진행자는 ‘사라진다’는 현상이 실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방송이나 영화에서 질리도록 봐왔던 현상이어서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주변에 뇌파를 연구하는 학자는 없다. 어쨌든, 진행자는 피실험자에게 다시 특별한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집중하세요.’

진행자의 말대로 피실험자는 미간을 찌푸려 가며 사라진다는 의미를 떠올리는데 집중하기 시작했고,신기하게도 결국 원하던 반응이 일어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일제히 ‘오! 집중력만 있다면, 미래에는 생각만으로 커튼을 칠 수 있겠어!’ 하는 생각을 하며 감동의 손뼉을 쳐댔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나는 미래에는 커튼도 못 치는 것이다!

갑자기 우울해졌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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