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예술가

샌프란시스코 매거진의 시티라이프 부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게 되었는데, 바로 샌프란시스코 예술인들이 어떻게 삶을 영위해 나가는가에 대한 인터뷰 기사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샌프란시스코의 집세는 미국 전역에서도 가장 높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긴 하지만 어느 정도 안전한 위치에 부엌을 낀 방(스튜디오라고 함)을 얻으려면 한 달에 $2,000불 이상은 줘야 한다. 생활비도 만만치 않은데, 세금이 높아 늘 가격표나 메뉴에서 보는 비용보다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거기에 팁은 별도. 이렇게 팍팍한 곳에서 예술가들은 어떻게 버텨내고 있을까?

기사를 보면 인터뷰 대상이었던 예술가들은 대부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세컨드 잡을 가지고 있거나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었고, 그래도 벌이가 시원찮은 사람들은 월세가 저렴한 샌프란시스코 외곽(오클랜드나 리치먼드 등)으로 이동하여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제레미아 젠킨스(35)씨 같은 경우는 리치먼드에서 그의 부인과 월세 1,600불짜리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으며, 오클랜드 중학교 교사 및 에버그린 밸리 대학의 온라인 강사로 활동하면서 연간 30,000불 정도를 벌고 있다고 했다. 일주일에서 4일은 학교에서 일을 하고, 하루는 그의 딸과 함께 뒤뜰에서 10시간 정도 그림을 그린다. 아직 학자금 대출이 100,000불 정도 남아있는데, 그가 아트스쿨 마지막 학기를 다닐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때부터 생활이 힘들어져 지금까지 학자금 대출을 못 갚고 있었다.

세금 관련 담당자가 만약 내가 올해 충분히 돈을 벌지 못한다면, 예술작업이 직업으로 인정되지 못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내가 아트스쿨에 갈 때 아버지께서 내게 했던 말 그대로예요

아버지들이 예지능력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식들이 아버지 말을 귀담아듣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젠킨스 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정확히 맞추고 말았다는 이야기. 기사의 다른 인터뷰도 젠킨스 씨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역시 예술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예술의 상업적 결탁에 강력한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는 순수예술 지향자들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 분야가 그들만의 리그인 것도 있고, 그것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받아들여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다. 그런 건 샌프란시스코든 서울이든 별 다를 바 없다. 그렇다고 예술이 아닌 다른 직업이 특별히 더 좋은 조건인 것도 아니다. 물론 실리콘 밸리에서 목돈을 긁어모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아주 특수한 경우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조사를 보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성공률이 1%라고 하니,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 것이다.

대신 몸을 쓰는 직업들은 우리나라보다 급료가 확실히 좋다. 한 번은 배관공사를 했어야 했는데, 전적으로 배관공의 일정에 따라 작업을 진행했다. 그의 개인적 사정으로 서너 번은 날짜를 옮겼던 것 같다. 날씨가 흐린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 흐리면 더 작업하기 좋을 것 같긴 하지만, 반대로 기분은 우울할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불평을 하면 배관공사를 받을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 한다. 

방문하는데 100불이고요. 상태에 따라 작업비가 추가됩니다

이렇게 무조건 방문비가 있고, 확인 후 견적을 들으면 입이 떡 벌어진다.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면 배관공 일을 하며 방문비만 챙기는 전략은 어떨까요? 하루에 서너 곳만 가서 일부러 거절당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삼사백 불을 벌 수 있다. 

그렇게 생활비가 높은 도시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고 편하게 산다. 외식도 많이 하고 여가도 즐긴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굻어야지’하는 사람은 적어도 이곳엔 없다. ‘없으면 또 벌면 되지 뭐.’ 하며 잔고에 여의치 않는다. 돈이 더 필요해지면 우버 드라이버를 하던가, 태스크 래빗에서 사이드웍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을 다시 식사 한 끼로 훅 날려버린다. 좀 멋지다.

우리나라와는 생활방식이 다른데, 어떤 게 더 좋다고 말하기는 힘든 것 같다. 누가 뭐라 해도 인생은 한번뿐이니까. 살아있을 때 즐겁게 지내는 건 중요하고, 매 순간 행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내일은 비참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취미에 돈을 들이는데 인색하지 않다. 심지어는 내일 먹고 살 돈이 없어도 오늘에 투자한다. 미술에 관심이 있으면 그림을 배우고, 연주에 관심이 있으면 악기 강습을 받는다. 그들은 직업을 삶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에 충실히 임한다. 기타 센터에서 메탈리카 후드티를 입고 드럼 교습을 받는 80대 할아버지의 행복해 보였던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쨌든, 기사의 결론은 이곳의 많은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생활이 녹녹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셔터 스트리트 근처 ‘Spoke Art’ 갤러리를 방문하셔서 이곳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멋진 작품을 구경도 하시고, 후원도 하시길 바란다. 젠킨스 씨도 학자금을 빨리 갚을 수 있게 되길 바라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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