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배추

아유. 정말 우리나라는 식료품이 너무 비싸. 마트에 한 번 가면 장바구니에 몇 개 안 담았는데도 십만 원이 훌쩍 넘어버려요. 나는 경기도에 살아. 집 앞에 텃밭이 있는데 거기에 이것저것 심어 놓으면 충분히 먹고살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게 다 유기농이잖아. 퇴비 밖에는 안 줘. ‘새농’이라는 유기농 마트가 있는데, 거기 가면 무 하나에 오천 원이나 하거든. 나는 돈 한 푼도 안 들이고 얼마 전에 텃밭에서 한 다섯 개 미리 따 뒀어. 비닐에 이렇게 담아서 넣어두면 오래 먹을 수 있다니까요.

그러면서 기사님은 운전석 귀퉁이에서 비닐에 담긴 무를 꺼내 보여주신다. 나는 그 무를 보면서 머릿속이 아주 복잡해졌다.

‘이분은 여자분일까. 아니면, 남자분일까?’

깔끔히 짧게 자른 후 기름을 발라 넘긴 머리는 분명히 남자인데, 목소리는 왠지 아줌마 같다. (물론 변성 발성 장애를 가진 남자분일 수도 있다) 운전이 상당히 거칠어 계속 조수석 손잡이를 잡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을 보면 상남자 같은데, 또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이야기의 화제는 묘하게 여성스러워서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 기후가 완전히 바뀌었잖아. 채소를 키울 때도 그걸 꽤 느끼게 돼요. 나는 배추도 키우는데, 배추는 품종이 60일 배추가 있고, 90일 배추가 있어. 그게 배추가 먹을 수 있을 만큼 크는 기간을 나타내는 거예요. 나는 90일 배추를 좋아해. 그게 더 맛있거든. 조금 더 오래 땅에 뿌리를 박고 있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60일 배추보다는 90일 배추가 더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야 하니까. 배추 키우는 게 정말 쉽지 않은데, 배추벌레도 젓가락으로 계속 잡아주고 그래야 하니까. 그걸 30일이나 더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더우니까 배추들이 금방 익어버리는 거야. 요즘은 30 일만 되어도 벌써 잎이 손바닥만 해지거든요.

나는 이미 더 이상 이분의 성별이 궁금하지 않았고, 점점 배추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아. 그래요? 60일 배추라면 아예 씨앗이 다른 건가요? 아니면, 농부가 기르다가 빨리 수확해버리면 60일 배추가 되는 건가요?’

‘손님, 도착했습니다.’

..
.

변 보다가 중간에 끊고 나오는 느낌이었달까? (죄송)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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