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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늘 그랬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 건지,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건지 헛갈렸다.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해도 작은 사건 하나로 세상 쉽게 무너져버리기도 했다. 그 둘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비교적 상황을 정확하게 간파하는 반면에, 서로는 – 정보가 훨씬 더 많음에도 – 객관적인 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람이 모두 조금씩 다른 것처럼, 지구 위의 사랑도 서로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사랑의 추상적인 개념은 비교적 쉽게 다가온다 해도, 현실화된 그것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 영화는 감독의 이름을 지우고 보여줘도 바로 ‘박찬욱 영화네’하게 될 거다. 그의 인지도가 표현 방식을 알아차릴 정도로 높아졌다고 볼 수도 있고, 스토리를 이끄는 방식 자체가 독특해서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일반적으로 그의 작품 스토리는 평범하지 않으며, 진행은 속도감이 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지만, 전달하는 방식은 유니크하다. 영화를 감상하고 나면 기억에 남는 미장센이 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몇 장면의 색감은 마치 미술작품처럼 마음에 새겨진다. 진행이 거칠지 않고 장면 장면 촘촘하다. 이 영화도 그랬다.
해준과 서래는 변사사건의 담당 경찰과 용의자로 처음 만난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그는 그녀를 용의자 선상에서 제외한 채 사건의 퍼즐을 맞춰가지만, 보면 볼수록 그녀는 팜므파탈인지, 살인자인지, 박애주의자인지, 피해자인지 혹은 그 모두인지 헛갈릴 정도다. 그러다가 우연히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고는 붕괴되어버리는 해준.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데 빠트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매너 있고 품위 있으며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해준이 건넨 저 말은 서래에겐 ‘사랑한다’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고지식한 그는 그렇게 자신이 속마음을 모두 쏟아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후 그는 그녀를 잊으려 하고, 그녀는 그를 잊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흐른다. 그러다가 그들은 안개의 도시 ‘이포’에서 재회하게 되고, 또 다른 살인사건에 연루되게 된다.
이 영화는 마치 형사물처럼 시작하지만 사실은 사랑 이야기다. 남자의 사랑은 명확하고 확실하다. 그런데 비해 여자의 사랑은 모호하고 숨겨져 있으며 바깥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서래는 그녀의 불행하고 기구한 운명에 등장한 하나의 곧은 사람, 해준을 사랑하고 싶지만, 그것은 그를 붕괴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이포’에서 그를 만난 후 필연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그녀는 마침내 그의 인생에 끼어들지 않으며 영원히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그녀가 사랑을 실현하는 마지막 장면은 박찬욱의 작품의 워터마크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그 장면을 보며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 보닛 위에 앉아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상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태주. 그때 상현은 그들의 사랑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죽음을 택했다.
사랑이라는 건 어리석은 방법으로도 장엄하게 실현되며 그 본질이 흐려지지 않는 것.
일반적인 주제를 독특한 시선으로 전달하는 박찬욱식 화법이 그리워질 때가 되었다면, 추천하고 싶은 신작, 탕웨이와 박해일 주연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