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친구들과 떠들다 보면 늘 ‘나는SOLO’와 ‘무빙’ 이야기였어요. ‘나는SOLO’라면 ‘손풍기 안 가져왔어? 손풍기?’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인데… 사실 연예 예능은 하트시그널 시즌2 이후 – 그것도 방영된 지 일 년이 지난 후 친구들의 추천으로 봤음 – 보지 않고 있습니다. 취향에 맞지 않아서는 아니고, 하트시그널에 너무 몰입해서 그 여운에 의리로 다른 프로를 일부러 피했다고나 할까? 하여간 그랬어요. 요즘도 오영주가 침대 위에서 휴지를 얼굴에 올리고 오열하는 모습이 마치 사진처럼 떠오른다니까요? 그렇게 세상 무너질 듯 눈물을 흘리던 그녀는 요즘 B급 셀럽으로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행복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무빙. 우선 감상한 사람들이 이미 너무 많다는 게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제 봐도 캐치업이지 전도사가 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웹툰을 그다지 즐겨보는 편이 아니어서 ‘무빙’ 자체를 모르기도 했고요. 그렇게 몇 개월 잘 버티다가 이 포스터를 봤죠.
그리고, 바로 무빙을 봤다는 이야기.
류승범 씬으로 긴장감이 조성되는 건 있지만 초반에는 학원 성장물 같은 느낌으로 천천히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후 각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풀어내며 여러 장르를 넘나들어도 그 기조基調 는 변하지 않아요. 긴장감이 폭발하거나 액션이 화면을 흔들어도 이야기의 전달은 슬로 템포. 덕분에 간간히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백을 서사로 촘촘하게 채워나가며 캐릭터를 빌드업하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실재實在처럼 다가오게 된다는 장점이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엔딩 즈음에 마치 감은 눈을 뜨자 눈꺼풀 뒤 광경이 일시에 망막에 투영되듯, ‘딸깍’ 스위치를 올립니다. 폭풍처럼 관객을 몰아붙이는데 숨을 쉴 여유조차 주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과거에 뿌려둔 장면들을 속도감 있게 연결하고, 캐릭터 서사에 의한 감정선도 자연스럽게 이어갑니다. 아쉬운 면이 없을 순 없겠지만, 복잡한 세계관을 가지면서도 이 정도로 탄탄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은 꽤 오랜만에 만나본달까?
이번만큼은 대충 요약해 둔 줄거리 만으로 이 드라마를 건너뛰는 사람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마찬가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빼앗는 포스트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 그런 이유로 어설픈 줄거리 나열은 건너뛰고 캐릭터나 음악 이야기만을 두서없이 조각조각 나열해 보려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스포일러는 있을 수 있으니 이 아래는 드라마를 본 사람들만 보세요.
초반 루즈한 부분을 견디고 엔딩의 카타르시스를 마주할 수 있게 의지를 견인한 건 고윤정이었습니다. 아주 예쁨. 그래서 이 드라마의 수식어를 딱 하나만 붙여야 한다면 ‘예쁜 드라마’라고 하고 싶네요. 물론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연기도 잘하죠. 생긴 것과는 다른 약간 허스키 저음으로 대배우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까지 갖췄다고 생각해요.(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김혜수나 전도연이 꽤 부러워할 것만 같음) 팬심으로 이어 이야기하자면 엔딩 즈음에 팔에 박힌 총알이 그대로 아물어버린 게 너무 가슴 아팠다는 거. 강풀 씨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씬시티 2가 흥행에 실패한 이유를 정녕 모르는 겁니까? 강력하게 항의하고 싶음.
조인성이 나오는 장면마다 ‘잘 생겼네?’를 연발했어요. 이전에는 잘 몰랐는데, 정말 잘 생겼음. 역시 얼굴에 손을 안 대야 자연스럽다는 거(손댔으면 어쩌지?). 연기도 이전의 특징적인 부분이 사라져 좋았는데, 모가디슈 때 보다도 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공중액션 시 포즈와 CG의 상성도 자연스러웠는데, 만화답게 자연스럽다고 할까? 덕분에 계속 하늘을 나는 장면을 기다리게 되더라고요. 특히 타임라인에서 오브젝트의 움직이는 방향뿐 아니라 속도까지 디테일하게 컨트롤해서 현실감이나 임팩트를 극대화한 부분은 박수로 칭찬하고 싶습니다. 내 칭찬에 그다지 신경 쓰진 않겠지만…
김봉석 역의 이정하는 이 드라마에서 처음 본 줄 알았는데, 꽤 재밌게 본 ‘런 온(JTBC)’에도 출연했다는 것을 필모를 보고 알게 되었어요. 그때의 스틸을 찾아보고는 ‘아 이 사람!’ 했었는데, 개인적으로 약간 살이 붙은 무빙에서의 모습이 훨씬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남자에게 이런 표현을 써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드라마에서 김봉석은 엄청나게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보고 있으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니까요? 남자를 보고 미소를 짓다니 내가 정신 나갔나 싶긴 하지만, 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이 드라마를 성장 드라마라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분명히 김봉석 때문일 텐데, 공중전에서 일격으로 나가떨어지다가 벽에 – 부딪치지 않고 – 발을 디뎌 다시 양동근에게 돌진하는 모습은 성장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라면 클라이맥스죠.
명불허전 류승룡은 여전했습니다.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 저는 본능적으로 뿌듯할 준비를 하게 돼요. 그 복잡 미묘하면서도 디테일한 표정이 엄청난 정보를 쏟아내기 때문입니다. 묘사나 은유가 가득하면서도 간결한 문장을 읽는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남자배우.
이야기의 중반 즈음에 치킨을 튀기다가 손을 같이 튀겼던 뜬금없는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데, 대체 왜 그랬던 건지 아직도 궁금합니다. 이상한 장면이었다고 이야기하기도 애매한 게 그때 뭔가 딴생각을 했어서 숨은 의도를 놓쳤을 수도 있기 때문인데, 엔딩 즈음에 비슷한 장면이 한번 더 나와서 계속 생각하게 되네요. 하지만, 다시 돌려보기 귀찮음.
류승범과 양동근은 외형이 계속 카리스마가 더해지며 그 나이에 맞게 트랜스폼 되어가는 느낌인데, 이런 건 배우에겐 엄청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몇몇 손에 꼽을 만큼의 배우들은 나이가 들어도 주변의 다른 배우들보다 여전히 잘 생겼지만, 결국 젊었을 때의 자신보다는 별로일 수밖에 없으니까. 류승범과 양동근은 확실히 젊었을 때 보다 분위기가 업그레이드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젊었을 때 그다지…
이 드라마에서 봉석이 희수를 응원하기 위해 만든 플레이리스트가 있는데, 그중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곡이 잔나비의 ‘투게더!’입니다. 잔나비의 팬이긴 하지만 이 곡은 이전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오래전에 지나쳐 버린 띵곡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게 되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죠. 요즘은 이 곡을 하루에 수십 번 돌려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돌려 들어도 담고 있는 내용이 그려지지 않아서 한번 가사를 정독하기도 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음. 내가 문해력이 떨어지는 건지, 아니면 잔나비가 멜로디/악기/가사를 적극 활용하여 대위법對位法으로 구성한 메시지의 난이도難易度가 높은 건지 아리송한데요. 뭐든 내가 문제라는 건 크게 다르지 않긴 함.
어서 시즌2가 나와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