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그녀는 그때까지 소파 등받이에 걸치고 있던 손을 스커트로 덮여 있는 무릎 위에 얹었다. 그 손가락이 스커트의 격자무늬를 천천히 더듬는 것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뭔가 신비스러운 것이 있었다. 그 손가락 끝에서 투명하고 가느다란 실이 나와, 그것이 새로운 시간을 엮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을 감자 그 어둠 속으로 소용돌이가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몇 개의 소용돌이가 생겨나곤 소리도 없이 사라져 갔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라는 하루키의 소설 첫머리에 등장하는 문장인데, 나는 이후로도 이렇게 멋진 표현을 마주한 적이 없다.

좋아하는 마음은 있지만 그게 뭔지 아직 모르는 소년은 오로지 정황적 감각만을 사용해 그 감정을 표현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현상의 주변 데이터를 기록하는 과학자처럼, 좋아하는 곡의 영어가사를 의미도 모르는 채 발음대로 받아 적는 초등학생처럼, 소년은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상상한 것을 성실히 기록한다. 

그 손가락 끝에서 투명하고 가느다란 실이 나와, 그것이 새로운 시간을 엮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50자 내외의 문장 안에는 과한 과장도 없고 감정의 폭발도 없지만, 계속 그 문장 안에 머무르게 되는 힘이 있다. 읽게 되는 누구라도 읽던 것을 잠시 멈추고 그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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