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자전거

요즘에는 날씨가 추워 멀리 안 가게 된다. 맞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라 자전거에 오르자마자 주변에 들어갈만한 곳을 찾기 시작하는 게 요즘 일상이다. 그런 패턴으로 지난주도 건대입구 근처 스타벅스 앞에서 멈추게 되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꽤 멀리 온 거다. 자전거에 락을 걸어두고는 들어가서 가져온 책을 조금 읽었다. 요즘 내가 고르는 책들이 그다지 재미가 없는 이유가 뭘까? 올해는 조금 심각할 정도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 카페를 나왔다. 그런데

자전거의 락이 안 풀린다.  

내 자전거 락은 지문 방식인데, 배터리가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꽤 오래 써왔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다. 한번 충전하면 꽤 오래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방전 워닝을 보고 충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방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기적으로 스스로 충전을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전거를 주변에 묶어두지는 않았다. 이런 류의 문제 해결법은 꽤 다양할 거다. 밴을 부르거나, 주변의 편의점 등에서 충전배터리와 충전선을 사 와도 된다. 아니면 가까운 자전거포에서 락을 끊어 달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뭣도 하기 싫었다. 위기 대처방안 같은 건 머리에 떠올리기도 싫다. 밴을 기다리기도 싫고, 도착했는데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싫다. 충전기를 사러 갔다 오기도 귀찮았다. 집을 들렀다가 다시 오는 것도 죽기보다 싫다. 일단 집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가장 저능아들이 선택할만한 방법을 택한 것 같다. 고민도 없었다. 나는 무식하게 자전거를 들고 집 쪽으로 걸었다. 

어깨가 쑤시고 다리가 아파왔다. 예수님이 골고다를 향해 십자가를 이고 올라가실 때는 이보다 훨씬 더 힘들었겠지. 하지만 자전거도 만만치는 않다. 카본이 아니었다면 그냥 길가에 던져두고 갔을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몸을 다친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분명히 자전거의 주인은 난데 말이다. 자전거는 돈을 주면 살 수 있지만, 몸살은 저절로 나을 것이다.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 스스로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자전거를 어깨에서 내려 끌고 가기 시작했다. 물론 락이 걸려있기 때문에 뒷바퀴는 바닥에 질질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 못 갔는데 갑자기 ‘피식’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쓸려 터져버리고 마는 뒷바퀴 타이어. 

그래서 더 편한 마음으로 끌고 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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