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6 일기

지각

워크숍에서 근태기강 확립을 위한 논의를 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것엔 크게 관심이 없다. 타임 매니징 보다는 태스크 매니징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니 만큼 규칙은 지켜야겠지. 그 정도면 충분한 것 아닌가? 규칙을 만드는 쪽에 서본 적은 없어서 분임토의 테이블에 앉아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중이었다. 

‘의견이 어때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게 물었다. 그 물음에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나를 쳐다본다.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만 할 것 같은 상황에 놓이자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되었다. 뭐라도 이야기해야 했는데,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이야기할게요.’라고 말하기엔 이미 늦어 버린 상황. 이 정도 정적이 흘렀으면 모두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나는 아무 말이나 하기 시작했다. 

‘스피드게이트에 출입카드를 대면 삑~ 소리가 나잖아요. 그 대신 지각을 하면 ‘지각!’이렇게 소리가 나게 하면 어떨까요? 아침에 지각을 하면 하루 종일 삑~ 대신 ‘지각!’ 하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데? 뭔가 더 원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보면 뉴스가 보이는 전광판이 있잖아요. 거기에 오늘의 지각자와 시간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요?’

이제는 계속 논리적으로 전개를 진행해 나가면 된다. 그런 건 내 전공이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그 리스트에서 이름을 삭제할 수 있는 기회는 줘야 할 것 같아요. 지각한 만큼 시간을 돈으로 보상하는 거죠. 월급에서 까는 게 아니라, 일하지 않은 시간만큼의 급여를 인사팀에 제출하도록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전광판의 이름을 삭제해 줍니다.’

왜 이렇게 좋아하지? 다들 생전 지각이란 건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처럼… 

‘그 방법이 너무 쉬우면 돈으로 지각을 사는 사람들이 속출할 수 있으니, 반드시 꼭 맞는 현금으로 제출하도록 해야 해요. 이만오천삼백이십삼 원. 삼원 같은 경우는 너무 구하기 힘들 수 있으니 적절한 반올림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인사팀에 저금통 같은 걸 마련해야겠죠. 그렇게 모든 프로세스를 준비했는데 지각자들이 점점 줄게 되면 어쩌냐고요? 음… 그렇다면 그 돈이 100만 원이 넘어갈 때마다 – 마치 복권처럼 – 이후 최초 지각자에게 상금처럼 전달되는 건 또 어떨….’

….

..

각 의견과 제안자를 적어서 인사파트에 전달하는 것인 줄은 정말 몰랐음. 

퇴사해야 하나?

자전거

아침엔 비가 내리는 것 같더니 오후쯤에는 말짱 개어버렸다. 일을 하느라 토요일을 대충 넘겨버려서 뭔가 하지 않으면 어영부영 지난주와 이어지는 듯한 다음 주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주 사이에 쉼표를 찍어 주말의 기억을 각인시켜 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전거라도 타고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한두 달 동안 찢어졌던 타이어와 나사가 떨어져 나간 페달을 교체했다. 해졌던 안장도 새로 앉혔다. 계속 신경 쓰였던 구동계 잡소리는 리어 드레일러를 몇 번 들었다 놨다 해줬더니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자전거용 왁스로 체인에 기름칠까지 해주었더니 막 병원에서 퇴원한 노병처럼, 드라이 직후의 니트처럼, 익숙하고 다부진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는 내 자전거. 갑자기 나는 자전거에게 묻고 싶어졌다. 

‘기껏해야 주말 집 근처 카페까지 달리는 정도인데.. 넌 어때?’ 

그냥 그 정도로 대부분 편히 쉴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을까? 아니면 산으로, 들로, 혹은 국도를 종주하며, 자갈길이든 진흙길이든 메인 프레임이 부러져 나가도록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가길 바라는 걸까? 

후자면 미안해서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왠지 그럴 것만 같아서, 카페 앞에 묶어 두고는 한참을 바라봤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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