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뤼팽

저는 어렸을 때 추리소설 마니아였어요. 아마 한글을 깨치자마자 처음 읽었던 책이 우리 집 책꽂이에 꽂혀있던 코난 도일의 셜록홈스 전집이었던 것 같네요. 그 이후 모리스 르블랑, 아가사 크리스티, 엘러리 퀸, 가스통 르루 같은 작가들의 고전들을 계속해서 읽어나갔죠. 물론 제일 좋아했던 건 명탐정 셜록 홈스였지만, 작품 안에 모리스 르블랑(루팡 시리즈의 작가)이 직접 등장하는 루팡도 – 집에 전집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 읽고 또 읽고 했었습니다. 솔직히 르블랑의 작품은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활극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읽어도 꽤 재미가 있죠. 캐릭터성이 강해서 그런지 주인공이 같은 모작도 나름 읽을만하다니까요? 이런 아르센 뤼팽이 첫 등장했던 소설이 바로 1907년에 발간된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이라는 단편 모음집이에요. 이 단편들은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들이었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뤼팽은 이 단편집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드라마의첫 화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걸이를 훔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요. 뤼팽의 단편집에도 여왕의 목걸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 목걸이의 주인은 뒤바리 부인 – 물론 그녀는 다른 사람이 목걸이를 가로채는 바람에 실체를 보지도 못했지만 – 이었지만 말이죠. 그리고, 그 목걸이를 멋지게 훔쳐낸 것은 여섯 살의 어린 뤼팽이었습니다. 그 도적질이 성공하는 바람에 뤼팽은 탐정이 되지 못하고 도둑이 되어버렸죠. 안타깝네요.

이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걸이는 주인공인 아산(오마르 시 Omar Sy 분)에게는 조금 특별합니다. 아버지가 이 목걸이의 도둑으로 몰려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살을 하게 되었거든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뤼팽’은 주인공이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활약을 담고 있습니다.

아산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주신 ‘아르센 뤼팽’을 읽고 뤼팽의 팬이 됩니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을 모방하며 범죄를 – 범죄가 아닌 것처럼 – 저질러요. 루팡이 원래 그렇잖아요. 루브르 박물관에서 목걸이를 훔치는 장면은 박진감이 넘치긴 하지만, 오션스 일레븐처럼 아구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멋들어진 구성은 아닙니다. 이야기 진행도 조금은 산만하고, 뭔가 좀 어설픈 부분도 있어요.

사실 주연인 오마르 시가 키도 많이 크고, 손발도 크고, 이목구비도 뚜렷하잖아요. 루팡의 설정은 난렵하고, 멋들어지고, 변장도 잘하고, 신사 같고 뭐 이런 클리셰들로 가득 차있는데, 이런 게 오마르 시와는 좀 거리가 있거든요. 그래도, 주인공이니까 하면서 마인드 컨트롤해보려 해도, 휴 덩지가 너무 커. 후반에 변장을 하고 방송에 나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내레이션에서는 완벽하게 변장했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이건 아산이잖아! 게다가 손도 크고, 손가락도 두껍고 해서 뭔가 문제가 생기면 기민하게 샥~ 처리하고 어둠 속에 숨기보다는 그냥 킹콩처럼 그 큰 손바닥으로 퍽퍽 내려치면서 문제를 해결할 것만 같습니다. 사실 그게 더 효율적일 것 같잖지 않나요? 저 정도 팔뚝으로 내려치면 타이슨이라도 안면이 아작 날 것 같은데… 어쨌든, 증거니 추리니 하는 것 다 내려놓고 봐도, 덩지와 인상만으로 그냥 바로 발각될 만 한데 주변 사람들은 다들 모른 척하고 놀라는 게 조금 웃기는 건 있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진행이 시원시원하긴 합니다. 아무리 덩지가 커도 이야기 속에서는 교도소에 갑자기 훅 들어갔다가 교정 간호사의 마음을 빼앗기도 하고, 원하는 정보를 얻은 후 자연스럽게 다시 교도소를 탈출하기도 하죠. 여러분은 혹시 뤼팽 소설의 가장 첫 이야기가 그가 교도소에 잡혀 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아시나요? 아산은 그 단편 소설에서 뤼팽이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수법으로 아버지 사인을 밝히기 위한 정보수집을 합니다. 드라마 내내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이 셋 있는데, 아산, 아산의 아들 그리고, 아무도 범죄자에 대한 감을 못 잡고 있을 때 혼자서 진상을 파악하는 – 덕분에 왕따를 당함 – 파리 경시청 소속의 형사 유수프 기데라가 그들입니다.

아산이 점점 과거 아버지가 관련된 목걸이 도난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했던 반전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라고 할까요? 주인공과 함께 머릿속의 정보를 수정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 마치 주인공과 한편이 되어 이인삼각 계주를 하는 느낌으로 드라마를 감상하시게 될 겁니다. 엄청나게 머리를 써야 하는 트릭이나 이어지는 명대사의 향연 같은 것은 없지만, 건장하고 이목구비 뚜렷한 호감형 주인공을 따라 한 편의 시대 활극을 보는 느낌으로 편하게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시즌이 다섯 편 밖에 안되어서 부담도 없거든요. 추리요? 아르센 뤼팽은 추리로 도둑을 잡는 형사가 아니라, 그런 형사로부터 훨훨 도망치는 곡예사라니까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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