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스타벅스가 생겼다. 집 근처 사거리에서 유독 지나가본 적이 거의 없는 모퉁이 옆 건물이었다. 심지어 그 자리에 건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명목상으로는 테이크아웃 매장이지만 건물에서 로비를 카페처럼 레노베이션해서 스타벅스에 제공한 것 같다. 아니면 스타벅스 쪽에 인테리어만 해주면 로비를 편하게 사용해도 좋다고 제안했을지도 모른다. 뭐든 건물을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을 거다. 덕분에 이 스타벅스는 MD상품 매대도 없고, 사이렌 오더에서도 테이크아웃만 선택 가능하다. 무료제공 와이파이도 없다. ‘room for a milk’를 선택한 후 우유를 요청해도 그 작고 예쁜 잔은 만나볼 수 없다. ‘매장에 글라스 자체가 없어서요’ 하며 머리통만 한 플라스틱 보틀에 담긴 우유를 들이민다. 하지만 사람이 많은 건물이 아니어서 로비의 멋진 테이블들은 모두 스타벅스 손님들 차지라는 거. 하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위의 모든 사실을 잘 모를 거다. 자신의 일만으로도 바쁠 테니까.

단언컨대 이 스타벅스는 서울에서 가장 손님이 없는 한가한 스타벅스가 될 거다. 애초에 사람이 많은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스타벅스가 너무 좋아졌다. 언제 와도 한가하고, 쾌적하다. 아침 일찍 오면 나 혼자뿐인 경우도 종종 있다. 통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안에서도 바깥의 날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이면 강추하고 싶어지는 우리 동네 스타벅스다.
얼마 전 이곳에서 음료를 주문하면서 시럽을 추가한 적이 있다. 사실 처음부터 시럽이 레시피에 없는 음료에는 그것을 추가하지 않는 게 정석이다. 시럽을 추가하고 만족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음. 어쨌든 그날은 추가를 했고, 음료가 완성되어 텀블러를 건네받는데 뭔가 묘했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 잘 몰랐다. 그냥 조금 이상했을 뿐이다. 그렇게 음료를 받아와서는 자리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랩탑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손이 미묘하게 끈적거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애매하게 불편했던 이유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텀블러의 주둥이에서 시럽이 약간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바로 냅킨에 물을 묻혀 텀블러를 닦고, 랩탑의 키보드를 닦고, 화장실에 가서 손도 닦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끈적거리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명시적으로 끈적거리는 게 아니라, 온몸의 감각을 최고로 끌어올려야만 느낄 정도의 미묘한 끈적거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가락 끝의 가시가 만들어내는 불편함처럼 말이다. 이 정도면 이건 물리적 끈적거림이 아니라 정신적 끈적거림일지도 모른다. 자기 암시만으로도 부정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미약한 끈적거림.
나는 결국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스타벅스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저녁 즈음 못다 한 일을 마무리하려고 랩탑을 다시 열었는데 – 이런 – 열리지 않았다! 손톱 끝을 집어넣고 힘을 주니 그제야 쩍 하며 벌어진다. 랩탑 키보드에 묻었던 본드, 아니 시럽이 덜 닦였었나 보다. 대체 스타벅스 시럽의 원료는 뭐지? 사탕수수보다는 초산비닐수지(PVA, 목공용 풀의 원료)에 더 가까운 느낌. 그건 그렇고 시럽이라는 건 젖은 냅킨으로는 제거가 불가능한 겁니까?
어쨌든 집 바로 앞에 스타벅스가 생겨서 참 좋다.
시럽은 주둥이 안으로 잘 좀 추가해 주시면 더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