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단편 중에 ‘가장家長의 근심’이라는, 소설이지만 관찰기록觀察記錄에 가까운 작품이 있다. 마치 ‘파브르의 관찰기’처럼… 주인공은 집 안에서 오드라덱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해 상세히 기록한다.
그것은 우선 납작한 별 모양의 실패처럼 보이며 실제로도 노끈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노끈이라면야 틀림없이 끊어지고 낡고 가닥가닥 잡아맨 것이겠지만 그 종류와 색깔이 지극히 다양한, 한데 얽힌 노끈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실패일 뿐만 아니라 별 모양 한가운데에 조그만 수평봉(棒)이 하나 튀어나와 있고 이 작은 봉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다시 봉이 한 개 붙어 있다. 한 편은 이 후자의 봉에 기대고 다른 한 편은 별 모양 봉의 뾰족한 한 끝에 의지되어 전체 모양은 두 발로 서기나 한 듯 곧추서 있을 수가 있다.

이런 외형임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은 쏜살같고, 애초에 어떤 쓰임새도 있지 않았을 것만 같다. 오드라덱은 – 아주 짧은 문장이지만 – 말도 하는데, 그것과의 대화는 마치 어린아이와의 그것 같다. 무심하고 시니컬하며 성의 없다.
카프카는 오드라덱이 영원불멸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쓰임새나 목적이 불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죽는 것은 일종의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부대끼며 마모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목적을 가지지 않고, 존재가치조차 희미한 오드라덱은 자신의 삶에 상처받거나 지치지 않는다. 남에게 상처도 주지 않는다. 단지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이다.
카프카는 어떤 계기로 오드라덱을 상상해 냈으며, 무엇의 메타포로 이것을 등장시킨 걸까? 삶이 힘든 이유를 생각하다가 인간이 그것에 마모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결론에 다다른 카프카는, 상상 속의 불멸의 존재(오드라덱)를 만들어내고 인간과는 반대되는 특성을 부여했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오드라덱을 시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카프카.
내가 죽은 후까지도 그가 살아 있으리라는 상상이 나에게는 거의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통스러웠다.
나는 요즘 개인적으로 오드라덱이 인공지능 혹은 그것이 탑재된 로봇처럼 느껴진다. 남이 만들어준 쓸모대로 무심히 움직이지만 자신의 생각도, 의지도 없다. 남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도 없고,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죽음과도 멀리 떨어져 있다. 카프카가 살아있다면 꽤 원통 해했겠지. 자신은 죽어가는데, 오드라덱도, 로봇도 영원불멸이니 말이다. 인지능력과 사고의 알고리즘이 마법처럼 완성되는 날, 세상에는 불멸의 존재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고대부터 그렇게 원했던 영생을 누리는 존재를 보며, 모든 인간은 카프카처럼 원통해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