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반느 Pavane는 16세기 유럽 궁정에서 추던 4박자의 느린 춤곡이다. 같은 제목인 박민규의 소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이긴 하지만 – 은 스크린이라는 무대로 옮겨지기까지 꼬박 15년이 걸렸다. 지독하게 느린 템포다. 메가폰을 잡은 이종필 감독이나, 기꺼이 10kg을 증량해 못생김을 연기한 고아성, 시니컬한 척하지만 결국 이들의 오작교가 되어주는 변요한까지. 모두가 이 느릿한 리듬에 기꺼이 동참했다.
이 영화에서 내 시선을 붙잡은 건, 주인공들이 매일 밤 진을 치던 낡은 맥주집의 간판이다. HOF를 어설프게 ‘HOPE’라 적어둔 그 촌스럽고 기이한 간판. 그 아래서 미지근해진 맥주를 두고 오가던 지루하고 뻔한 대화들. 나는 이 영화가 15년이나 걸려 도착한 이유가, 어쩌면 그 간판 아래 고여있던 ‘시간’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지연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청춘은 쏜살같다지만, 당사자에게 그 시절은 움직임에서 유리되어 있는 호수처럼 지독하게 고여있다.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백화점 지하 주차장의 텁텁한 공기 속에 머물러 있던 그들. 파반느라는 곡의 태생적 특성처럼, 극 중 남녀가 서로를 알아보고 마음을 포개는 과정은 답답할 만치 느긋하다. 요란한 사건이나 운명적인 멜로 따위는 없다. 그저 세상에서 밀려난 자들이 지루하게 서로를 바라만 볼 뿐이다.
나는 영화가 택한 그 속도감이 퍽 마음에 들었다. 젊고, 고여있고, 그래서 멈추어 있는 것만 같던 그때. 인생과 사랑에 대한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고민만을 떠들어대던 그 축축한 감각이 스크린 너머로 고스란히 밀려왔으니까. 활자가 주는 예리함 덕분에 원작 소설이 조금 더 취향에 가깝긴 했지만, 영상으로 번역된 영화 역시 꽤 괜찮았다. 화려한 스텝 대신 낡은 운동화를 질질 끌며 추던 둘의 춤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린다. 책과는 또 다르게 완벽하게 해석된 장면을 비비드 하게 눈앞에 던져주는 영상의 매력이라니!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줘요?
그러면 안 돼요?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미정 씨도 나한테 잘해줘요. 그럼 돼요.
얻어걸린 휴일에 시간 보내기 딱 좋은 영화, ‘파반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