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전주 후 맞이한, 그 어느 때보다 찬란했던 가을

추석연휴 때 또 자전거 사고가 났다. 자전거를 타는 중에 메시지를 확인하다가 넘어진 것이니 억울할 것도 없긴 함. 그런데 생각보다 부상이 컸다. 생각해 보면 매년 한 번씩은 자전거 사고가 났던 것 같은데, 또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차장님께서 말씀하신다.

‘아니 정말 굿이라도 하셔야겠어요.’

평소에 말씀 전달에 열심이신 분이어서 조금 재미있었음. 다음에는 혹시 점도 보시냐고 물어봐야지. 그건 그렇고 사고 때 양 무릎이 모두 바닥에 쓸려 습윤밴드를 붙인 지 일주일 정도 되었는데, 한쪽 무릎이 유독 더 아프다. 추가하자면 이번 사고에는 이년 전 자전거를 타다가 부러졌던 앞니도 다시 부러졌다.(자전거 더럽게 못 타는 사람 같아 보일까 봐 걱정) 게다가 나는 사고 이주 전부터 양쪽 어금니를 치료하고 있던 중이었다는 거. 그렇게 삐걱거리는 상태로 연휴 다음 한주를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갑자기 거짓말처럼 날씨가 싸늘해졌다. 어제는 자전거를 끌고 나오자마자 추워서 다시 집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니까? 하지만 꾹 참고 건대 근처까지 갔는데, 무릎이 너무 아파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근처 카페를 찍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이제는 어금니가 아픔. 

치료 중인 이는 36번과 17번인데, 36번은 하악좌측, 17번은 상악우측에 존재한다. 치과에서는 환자와 의사 간의 보는 방향의 혼선을 원천차단하기 위해 FDI 치아 번호체계를 사용하는데,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치아마다 성인 영구치 기준의 두 자리 숫자 이름을 정해두었다는 거다. 그런데 저 번호는 치과의사들만 안다는 게 좀 웃긴 포인트임. 2주 전 치과에서 친구(친구는 동네 치과의사임)와의 대화를 소개하자면,

’36번 이빨을 신경치료 할게.’ 그래봤자 내가 알아들을 리가 없음. 

‘응, 좌측의 아래쪽 이빨을 이야기하는 거야.’ 내가 보는 입장인 건지, 아니면 의사가 보는 입장인 건지 좀 더 명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함. 

‘….. 지금 아픈 이빨, 이놈아!’

양쪽 모두 아래쪽이라면 질문이 계속 이어졌겠지만, 다행히 그렇진 않았다는 거. 친구는 왼쪽을 먼저 신경치료 하고, 오른쪽은 경과를 보다가 아프면 신경치료 하자고 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그다지 아프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제부터 너무너무 아팠다. 아랫니가 따라 아프더니 갑자기 뒷골이 땅기고, 자고 일어났더니 온몸이 다 쑤셨다.

치아의 뿌리는 우리 몸의 12개 뇌신경 중 가장 크고 통증에 민감한 삼차신경(Trigeminal nerve)과 다이렉트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아시는지? 손끝이나 발가락을 다쳤을 때는 통증 신호가 척수를 거쳐 뇌로 전달되지만, 치통은 하이패스로 뇌의 통증 센터에 다이렉트로 꽂힌다. 게다가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면, 피부나 근육은 염증이 생기면 부어오를 수 있는 여유공간이 충분한 반면, 치아 내부의 신경은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조직인 법랑질과 상아질로 완전히 밀폐되어 있다. 덕분에 염증이 생겨도 도망칠 공간이 1도 없기 때문에, 그 엄청난 압력이 고스란히 갇힌 신경을 짓누르게 된다. 내가 엄살이 심한 편은 아님. 

계속 이야기해보면 그런 이유로 오늘 아침 온 몸이 아팠고, 뭔가를 먹고 나면 그 고통은 열 배는 더 커졌다. 그래서 뭔가를 먹기 전에 타이레놀을 두 알 먹었다. 이렇게 아픈데도 배가 고픈 나는 진심으로 한심한 인간 식충이다. 그런 와중에 이를 부딪치지 않고 그 사이에 음식을 넣은 후 비비듯 갈아먹으면 통증이 조금 덜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땅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한심한 나 자신.

다행히 오늘 오후 두 시에 치과 예약이 되어 있어서 가까스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치과로 가는 길이 어찌나 힘들던지… 친구 의사가 자리에 오자마자 제발 다른 한쪽도 신경치료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신경치료라고 너는 이야기하지만, 나는 네가 내 이 속의 병든 신경을 완전히 긁어내는 작업을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신경과 핏줄이 모두 제거된 치아는 영양분과 수분 공급이 끊겨 마치 마른 장작처럼 푸석푸석해지고 깨지기 쉬운 상태가 되겠지. 하지만 나는 네가 내 몸의 일부를 죽여 나와 유리시키는 시술을 하는 것을 허락하노라. 드럽게 아프니까.’

치료를 하고 나오니 그제야 완연한 가을하늘이 펼쳐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했다.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오늘과 100퍼센트 딱 어울리는 곡, 일본의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 와타나베 유우의 ‘Across the Universe’를 들었다.

이제 가을이 왔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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