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호>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에요. 이 작품은 기존의 하루키 작품과는 달리 주인공이 여성이죠. 기존 작품들은 나이가 다르긴 했지만 대부분 작가 자신을 투영한 남자가 주인공이었고, 하루키로 치환해 상상해도 크게 위화감이 들지 않았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성별에 따른 작품의 분위기의 변화는 크지 않은 편.
주인공인 <가호>는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일러스터로 혼자 살아가고 있는 30대 정도의 여성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녀는 우연히 아는 출판사 직원의 소개로 소개팅을 하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이후 엄청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된다.
하루키 전매특허, 인간형 캐릭터(?)들과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스토리가 일품이며, 미려하게 이어지는 세련된 비유적 문장은 언제나처럼 독자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밀어붙입니다. 중도하차 마니아인 저도 첫 페이지를 넘긴 지 하루 만에 완독을 했으니, 그의 서사적 견인력과 문체적 응집력은 변함이 없다고 평가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네요.
이 이야기는 젊은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기형 스토리예요. 그 나이 즈음 대부분 그렇듯 주인공도 자신의 주변 여러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고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만 건드리며 살아갑니다. 주변에 정리하거나 풀어내야 하는 애매한 관계의 실타래들이 존재하지만, 그녀는 보지 않은 것처럼 알지 못하는 것처럼 지내죠. 하지만 특정 사건을 계기로 주변에 이끌려가며 큰 변화를 겪게 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며 결국은 주체적으로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하게 됩니다. 이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액자형으로 써내려 간 동화책들은 그녀의 성장과 회복을 상징해요.
인생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매 순간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며, 남이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말도 믿지 말고, 누구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며,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고, 결국 극복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 모두는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이 ‘칼 가는 집’에서 두 번째 재규어와 마주하는 열 페이지 남짓으로 정말 숨도 못 쉬고 읽었어요.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마지막 즈음 그녀가 어머니에게 들었던 이 말.
‘얘, 다들 언젠가는 그렇게 사라지는 거야.’
개인적으로는 추천이지만, 팬심이 더해지지 않았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