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시술자공유법

‘잠깐만 실례할게요.’

그는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있는 그녀의 팔뚝 아래쪽에 보이는 나비 문신을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그러자 문신 위쪽으로 ‘작성자 전송’이라는 홀로그램 버튼이 떠오른다. 그가 홀로그램의 승인 버튼을 터치하자 ‘띠링~’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투이스트 정보가 전달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잠깐 나타났다가는 이내 사라진다.

‘고맙습니다. 문신이 너무 예쁘네요.’

‘아, 네. 감사합니다.’


지난달 2년 만에 문신시술자공유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일명 ‘김수란법’이라고도 불리는 문신시술자공유법은 3년 전 21세의 나이로 성수대교에서 투신했던 ‘김수란’씨 때문에 발의가 됐다. 3년 전 그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퇴근하던 중 버스가 대교 옆의 정류장에서 잠시 정차했을 때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성수대교의 난간으로 돌진하여 투신을 했었다.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아주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너무 순식간이어서 주변의 누군가가 말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녀가 그런 선택을 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그녀는 버스 안의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조용히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단다. 주말 오전의 거리는 한가했고, 버스 안은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프랑스의 루드르처럼 조용했다. 아마 그때 버스에 탄 사람들에게 가장 신성한 곳을 물었다면 모두 그 버스 안이라고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천천히 도로를 이동하던 버스는 한 정류장에서 멈춰 섰고, 그곳에서 어떤 젊은 남자가 혼자 버스에 올라탔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그녀의 옆에 섰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손을 올려 버스 손잡이를 잡았다. 그때 손잡이 아래 매끈한 위팔근 위로 유니콘 문신이 살짝 보였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문신에 큰 관심이 없던 그 아주머니도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되었단다. 아주머니뿐만이 아니라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이 그 빛이 나는 듯한 팔뚝의 문신을 쳐다보았다.(실제로 빛이 났었다고 증언한 사람도 있었음)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그의 옆에 서있던 수란 씨가 입을 열었다.    

‘그 문신 어디서 하셨어요? 너무 예뻐요.’

하지만, 그는 그녀를 흘낏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모르는 사람과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늘 있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그렇다.

‘문신하신 곳이 어딘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그녀는 다시 한번 물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손가락을 들어 그의 팔뚝 위 문신을 꾸욱 눌렀고, 그는 놀랐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거예요? 그걸 내가 왜 알려줘야 합니까?’

그녀는 얼른 손가락을 떼고는 고개를 숙였다. 숙인 고개 밑으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문신 속 유니콘이 빛나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에서도 순간적으로 빨간빛이 나는 것 같았다. 인테리어를 하는 한 승객은 그녀 얼굴에서 발산되는 빛의 조도가 1룩스는 되어 보였다고 했고(1룩스면 보름달보다도 다섯 배나 밝다), 과수원을 운영하던 승객은 11월 잎사귀가 다 떨어진 상태의 홍시 색깔 같았다고 증언했다. 유니콘 문신을 보던 버스 승객들이 일제히 시선을 그녀의 얼굴로 돌렸고, 그녀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다. 그때 다시 버스가 정차했고, 뒷문이 열렸으며, 순간 그녀는 문으로 달려갔고, 성수대교의 난간을 뛰어넘은 것이다. 

문신을 한 장소를 물어보다가 무시를 당한 후 그 굴욕감에  자살을 한 이 사건에 시민들은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했고, 여러 단체나 SNS에서는 다각도의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물론 지금까지 발생했던 어떤 자살사건 보다도 애처로운 사건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면 안 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문신을 아예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은 타투이스트들을 광화문 촛불 시위로 이끌기도 했다. 문신에 대한 문의에는 무조건 답변을 해야 한다는 여론 덕에 농인들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신체적 단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들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100만 명 이상이 재발 방지를 위한 안을 만들어달라는 국민청원에 동의를 했지만, 정부 조차 한 달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일부 노인들과 태극기 판매자들은 무능한 정부를 비난하며 국기를 들고 시청 앞으로 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건은 잊히는 듯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식어갈 무렵, 김인수라는 딱히 할 일 없는 변호사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타투이스트들은 문신 작업을 할 때 자신의 소개 웹페이지를 가리키는 URL을 담은 QR코드를 함께 남길 것

시민들은 다시 이 사건을 복기하며 해당 제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의견은 많은 반대 의견을 양산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디자인에 의도하지 않은 QR 코드가 포함되어 예술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코드 모양을 고려하여 디자인할 수 있다는 타투이스트들도 있었지만, 타투 고객들은 의도하지 않은 기호가 추가된다면 타투를 하지 않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빅브라더 시대로 진입하기 위한 의견이라는 음모론도 대두되었다. 전국적으로 10만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던 타투 동호회, ‘타투 해븐’의 운영자는 인터넷에서 QR코드 문신을 추가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청원서를 돌리기 시작했고, 반대하지 않는 회원은 ‘타투 해븐’의 자격을 박탈하는 강수까지 두었다. 청원이 10만 명을 넘기자, QR코드 문신 안을 받아들이려던 타투이스트들도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한가한 김인수 변호사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정부에서는 타투이스트들이 디자인을 특허 등록을 하도록 하고, 딥러닝을 통해 유니크한 등록 디자인을 인식하여 타투이스트 고유 정보 페이지로 매핑하는 앱을 만들어 배포할 것

타투이스트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지만, 능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반대 의견을 낼 수가 없었다. 고객들은 보기 싫은 QR코드를 함께 달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크게 만족했다. 그런 이유로 이 의견은 큰 문제없이 국회를 통과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다른 반대 의견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타투이스트 정보를 알고 싶을 때마다 앱을 꺼내 남의 문신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 정서적 측면에서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몰카로 오해받을 소지가 충분했다. 이 문제는 각 뉴스에서 메인타이틀로 다뤄지며 다시 한번 전국을 뒤흔들었고, 도저히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할 일이 정말 없던 김인수 변호사는 몇 주 전 출시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를 사용하는 새로운 안을 제시했다. 

정부에서는 타투이스트들이 디자인을 특허 등록을 하도록 하고, 딥러닝을 통해 유니크한 등록 디자인을 인식할 수 있게 할 것. 그리고, 홀로렌즈를 착용한 채로 타투를 보면 증강현실로 타투 위에 타투이스트 바로가기 버튼이 뜨고, 이를 터치하면 타투이스트 정보가 홀로렌즈 사용자에게 전달되게 할 것. 

이 의견이 제시되자마자 정부는 홀로렌즈를 구매해야 한다는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실제 가격의 50%에 달하는 부담금을 제공하기로 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메타버스 준비를 위한 하드웨어의 보급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계산으로 추가 프로모션을 제시했다. 그런 상황에서 문신 시술자 공유법은 빠른 속도로 국회를 통과했고, 바로 정부는 한국저작권위원회와 협업하여 저작권 등록 사이트를 활용해 타투 디자인 등록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나머지 디자인 정보 딥러닝 학습 및 증강현실 앱 개발은 카이스트와의 협력하에 빠르게 진행/배포되었다. 법안이 통과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룩한 쾌거였다. 시민들은 실제 가격의 1/3도 안 되는 가격에 홀로렌즈를 구매할 수 있었고, 타투이스트들은 저작권위원회의 등록 사이트를 통해 자신들의 디자인을 등록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으로 의도하지 않았던 타투이스트들의 타투 디자인 저작권까지 관리되는 시너지 효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문신 시술자 공유법(일명 ‘김수란 법’)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공유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타투를 많이 하는 이탈리아나 스웨덴에서도 시민들의 강경한 지지로 같은 법안이 통과되었다. 우리나라는 해당 작업을 위한 시스템을 수출하여 생각지도 않았던 이익을 남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해당 법안이 통과된 지 반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유튜브에 전 세계가 경악할만한 영상이 올라왔다. 해당 영상을 올린 것은 최초 희생자였던 김수란 씨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방송이나 SNS가 닿지 않는 시골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딸 자살 때문에 발생했던 모든 일에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우연히 서울에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친구 아들의 도움을 받아 유튜브에 이렇게 클립을 올리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의 딸 때문에 발생한 상황에 책임을 느끼고 사실을 전달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영상 속에서 그녀는 – ‘좋아요’나 ‘구독’을 요구하지도 않고 – 비장하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 애가 자살을 한 날, 그 애의 책상 속에서 두장에 걸쳐 빼곡히 적힌 유서를 발견했어요. 회사 상사의 이야기에 혹해서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십 년 동안 저축했던 오천만 원을 코인에 투자했는데 빌어먹을 미국 기업가의 한마디(그녀가 자살을 하기 전 주에 그 기업가는 자신의 제품을 코인으로 구매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내용을 철회했었다)로 코인은 80%가 날아가 버렸고,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어 자살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에 한마디를 더한 후 영상을 끝맺었다.

‘그 애는 남에게 뭐라고 한마디 들었다고 자살할 애는 아니었어요. 얼마나 싹퉁머리가 없는 앤 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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