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또 살아 볼까요?

‘비긴 어게인’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원스의 감독이었던 존 카니의 또 다른 음악영화인데, 이런 류의 영화가 그렇듯 좀 뻔한데 재밌죠. 나만 그런가? 어쨌든, 이 필름의 여주인공인 그레타는 뮤지션을 남자 친구(무려 마룬 파이브의 리드보컬 애덤 르빈)로 둔 작곡가인데, 유명세를 타면서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그와 헤어지게 돼요. 침울하게 지내던 그녀는 친구와 함께 기분전환을 위해 근처의 바로 향합니다. 그곳의 오픈 마이크에서 그레타는 친구에게 등 떠밀려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이때 한물 간 프로듀서인 댄의 눈에 띄게 되어 같이 음반을 준비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줄거리예요.

이 프로듀서는 자금사정이 안 좋아서 여러 세션들을 후불로 불러 – 윽, 이래서 음악 하는 사람들이 배가 고프다고요 – 뉴욕 여기저기에서 스트리트 레코딩을 거행합니다. 그런데, 프로듀서 댄에게는 바이올렛이라는 좀 서먹서먹한 관계의 딸이 하나 있어요. 그레타는 둘의 사이를 개선시켜주고 싶어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옥상에서 수행할 계획인 레코딩에 바이올렛을 초청합니다. 그녀는 취미로 기타를 치니까 세션에 참가해달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빌딩 옥상에 모인 음악가들은 ‘Tell me if you wanna go home’이라는 곡의 합주를 시작합니다. 벌스가 지나자 그레타는 가만히 앉아있던 바이올렛에게 기타를 치라고 손짓을 해요. 천천히 일어나서 플러그를 꽂고 합주 위에 기타 멜로디를 얹는 바이올렛. 저는 이 장면에 등장하는 모두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요? 


옛날에 친구들과 음악을 한답시고 합주실에 모여서 하루 종일 연주를 하던 때가 있었어요. 다들 실력이 고만고만 별로였어서 각자는 정말 보잘것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모여서 합주를 하다 보면, 드럼의 박자에 기타와 베이스의 스트로크가 기가 막히게 오버랩되면서 그 위에 보컬이 그림처럼 흐르는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거든요. 그 순간에는 주변의 모든 게 슬로비디오처럼 움직입니다. 마치 시간이 멈추기 직전처럼. 물론 자주 경험했던 일은 아닙니다만, 어설프게 음악을 하면서 고통스러웠던 모든 것을 보상받는 듯한 그 순간만큼은 아주 오래됐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그림처럼 남아있어요. 

연주자들과 유리된 공간에 존재하다가, 그 안으로 들어가 여러 세션들이 만들어낸 그루브 위에 자신의 기타 소리를 얹게 되는 경험이라니! 얼마나 짜릿했을까요? 두근두근, 드럼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자신의 심장소리, 고막이 아닌 몸 전체의 울림으로 듣는 사운드. 그리고, 같이 공명하는 연주자들, 동료들. 아마도 그녀는 저 순간만큼은 ‘조 새트리아니’도 ‘랜디 로즈’도 부럽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그녀는 평생 기타를 놓지 못할지도 모르겠어요. 밴드는 그런 거니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시대에 비대면이 비즈니스 상호작용의 새로운 흐름이 된다며 모두 언택트 플랫폼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죠.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그게 더 마음 한편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버려요. 팬더믹 상황과 더불어 더 치열하게 경쟁에 들어간 게임 체인저들의 물리적 거리 두기 프로젝트인 가상현실, 메타버스가 정말 우리에게 최선일까요?

세상이 그렇게 변해버린다 해도 같은 공간 안에서 공연 전 악기 튜닝 소리에 두근두근하던 경험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할 수 있다는 원죄로 타 생물보다 불행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류가 행복할 방법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함께라는 것에 위로받는 것뿐이기 때문이에요. 

올 가을에는 작은 공연이라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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