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갔을 때의 이야기인데, 여느 때처럼 무작정 런던 거리를 걷다 보니 우연히 자연사 박물관에 도착했었다. 이런 건 길을 잘 못 찾는 사람들의 장점인데, 아마 ‘자연사 박물관을 가야겠어.’하고 일부러 움직였다면 적어도 그날은 도착 못했을 수도 있다. 우연히 도착했으니 대충 둘러보고 나오려 했지만, 더 걷는 것도 귀찮고 오랜만에 보는 공룡들이 반가워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되었다.
조금 돌아다니다 보니 쥐라기 시대처럼 꾸며놓은 전시장 앞에 학교에서 단체로 온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그들 중 일부는 열심히 공룡 뼈를 그리거나, 뭔가를 노트에 적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런 아이들 중 몇 명은 나중에 쥐라기 공원 같은 영화를 만들거나, 오지에서 공룡 화석을 발굴하고 있겠지.
난 공룡이 싫다고!
하면서 투덜대는 아이도 있는데, 역시 음악이나 정치 분야를 맡아야 하는 아이들도 필요하니까. 어쩌면 세상은 어떻게든 대충 역할을 나누어 적절히 돌아가도록 만들어진 구조인 것일지도 모른다. 교육부에서 공룡학자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의 비율을 매년 조사하고 있는데, 늘 동일하게 3.2%라는 것을 알고 계신지?(이건 거짓말) 만약 사실 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대충 살고 있을 것이다.
약간 배가 고파져서 박물관 내부에 있는 카페에서 치킨 랩, 레몬 케이크,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치킨 랩은 차가운 마분지 같았고, 케이크는 너무 달았으며, 커피는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썼다. 영국에 오기 얼마 전에 미국 친구가 영국 친구에게 ‘너희 나라는 특색 있는 요리가 없지?’하고 놀렸던 것이 생각났다. 질문을 받은 – 아니 놀림을 받은 친구는 뭐라고 대꾸도 못하고 바보처럼 웃기만 했는데, 덕분에 ‘정말 없나 보네.’ 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영국에서 먹었던 음식 중 기억나는 게 정말 하나도 없다. 그나마 귀동냥으로 들었던 피시 앤 칩스도 샌프란시스코의 워터바 레스토랑(여긴 정말 강추)에서 먹었던 게 훨씬 더 나았다. 생선살 튀김이 특산요리라니 더 할 이야기도 없긴 하지만.
물론 요리쯤은 맛이 없다 해도, 영국에는 베이커가 221번지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