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애플이 실리콘 ‘M1’ 프로세서와 함께 새로운 맥북 라인을 발표했죠. 인텔의 x86 기반의 생태계를 벗어나, ARM 기반의 자사 개발 칩으로 효율과 성능을 끌어올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입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도 2018년에 ARM 기반의 Surface 모델을 발매했었지만,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어요. ARM 아키텍처 기반 CPU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문제는 호환성이기 때문입니다.
아키텍처가 다르기 때문에 ARM 기반의 CPU를 사용하려면 OS나 애플리케이션 모두 재개발을 해줘야 합니다. 덕분에 MS도 ARM용 윈도를 새로 개발했어요. 하지만, 이미 생태계의 범위가 어마어마한 윈도에서 기존의 모든 앱들이 ARM 기반 CPU에서 native로 돌아가게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기존 인텔 칩을 사용하는 랩탑이 95%가 넘는데, 중소규모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그런 지원을 해줄 리가 없죠. 하지만, 이번 애플의 상황은 MS와는 조금 다릅니다. 무엇이 다른지 세 가지 정도로 살펴보자면,
맥북은 애플에서만 만든다
벌써 맥북에어와 맥북프로 13인치 모델이 나왔죠. 게다가 이전 모델은 단종. 앞으로 1~2년만 지나면 인텔 칩 맥북은 더 이상 판매가 되지 않을 겁니다. 애플은 Windows 시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공산주의적 독점체제로 소비자 선택의 폭을 아예 없애버릴 수 있는 거죠. 그러면, 개발자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지원을 해줄 수밖에 없는 겁니다. MS는 ARM용 윈도의 점유율을 죽었다 깨어나도 90% 이런 식으로 만들 수 없어요. 예측해보건대 성공적인 전환을 했다는 평가를 받아도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은 이전 x86 기반의 Windows 팀을 계속 유지해야 할 겁니다. 반대로 애플은 3년 후면 x86 기반의 지원을 50% 미만으로 줄일 수 있겠죠? 해볼 만한 거죠 그 정도면.
맥북을 쓰는 용도는 하나다
사람들은 윈도 랩탑으로 수많은 일을 합니다. 게임도 하고, 문서도 작성하며, 사진/영상 편집까지. 심지어는 필수교육 이수를 위한 자동 마우스 클릭 프로그램까지 사용한다니까요? 소비자들에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게, 일단 준 것을 빼앗는 거예요. 별의별 소비자가 다 있다는 걸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Macbook은 프로페셔널 용도로만 사용하는 경우가 꽤 많아요. 음악 프로듀서, 사진작가, 개발자 등이 그런 사람들이죠. 그런 이유로 킬러 앱 위주의 지원계획 만으로도 생각보다 잡음이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Native로 재개발된 앱들은 성능도 서너 배씩 좋아진다고 하니 오히려 만족도가 더 클 수도 있겠죠?
이미 ARM 기반의 iOS용 앱이 주류다
웬만한 개발사들이라면 이미 iOS용 앱도 함께 서비스하고 있을 겁니다. 소규모 개발사라면 모바일 앱만 제공하는 경우도 꽤 많죠. 그 소스를 활용한다면 생각보다 적은 노력으로 전환이 가능하고, 오히려 모바일 소스를 재활용하여 랩탑용 애플리케이션 릴리즈까지도 쉽게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런 이유로 애플의 ARM 전환 작업은 생각보다 수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기존 ARM 기반의 iOS용 앱들을 그대로 구동시킬 수도 있으니 국내의 경우는 은행/공공기관의 서비스 사용이 더 용이해질 수도 있어요.
9 TO 5 MAC의 기사를 보면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의 서비스, 디즈니+ 등 애플 실리콘 맥북에서 구동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하죠. 기업에 따라 그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다양할 겁니다. 그 이유들을 상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거미줄 같이 얽혀있는 복잡한 먹이사슬의 기운은 느껴지실 겁니다. 꽤 오래전에 ‘나이키의 상대는 닌텐도다’라는 책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상식적으로 이해 가능한 선을 넘어 – 시스템 안쪽을 들여다봐야 겨우 감을 잡을 수 있는 – 상상초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어쨌든, 개발자라면 애플 실리콘 맥북 에어 정도를 구매해보는 것은 추천드려 봅니다. 프로는 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