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Posts created 495

순화매점

그녀는 오늘이 카페를 정리하는 날이라고 했다. 계약 기간도 만료되었고,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것도 아니고, 겸사겸사 오늘 오후에 짐을 뺀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몽크스 하우스의 정원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면서 버지니아 울프와 그의 남편인 레더드가 정성을 다해 한해 한해 가꿔온 몽크스 하우스의 정원이 마치 하나의 소우주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마치 그곳에서 태어난 것처럼 생활했으며,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 안에서 평화를 얻었으며, 그 안에서…

무라카미 T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나 ‘더 스크랩’ 정도로 지루했어요. 그런데, 하루키의 에세이를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도 재미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자신이 없긴 해요. 그의 글에 너무 익숙한 제게만 적용되는 지루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니까. 늘 반복되는 위스키, 재즈, 마라톤 비유에 더 이상…

치즈와 버터

친구가 물었다. ‘치즈’ 들어봤어요? ….그건 먹어만 봤다고. 그건 그렇고 BTS의 ‘Butter’는 마이클 잭슨이 불러도 정말 잘 어울렸을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국내차트에서는 오마이걸의 ‘Dun Dun Dance’가 1위를 할 수 있었겠지. 그런데, ‘버터’라는 음악가도 있다는 걸 아시나요? ‘Butter’를 검색하다가 잘못 터치해서…

오마카세와 복명복창

그렇게 한 여덟 접시가 나온 직후였을 것이다. 또 새로운 접시가 우리 앞에 도착했고, 셰프는 뭐라고 웅얼거렸으며, 그 친구는 미간을 접으며 또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커다랗게 외쳤다.

다음 실연은 더 편해질 거예요

아주 가끔은 뭔가를 이야기해달라는 듯한 표정으로 차례를 넘겨주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의 증명을 위해 빈 칠판 앞에 선 학생처럼 난처해진다. 내가 더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괜찮아질 거야’ 정도뿐이다. 물론 쉽게 괜찮아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괜찮아진다.

문신시술자공유법

그녀는 얼른 손가락을 떼고는 고개를 숙였다. 숙인 고개 밑으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문신 속 유니콘의 뿔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도 순간적으로 빨간빛이 나는 것 같았단다. 유니콘 문신을 보던 버스 승객들이 일제히 시선을 그녀의 홍시 같은 얼굴로 돌렸고, 그녀의 얼굴은…

무언가를 잘 하기

태초에 계이름이 있고, 코드가 있고, 코드진행 가이드가 있지 않았겠지. 그냥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즐겼을 뿐일거다. 더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더 즐겁기 위해, 계속 반복에 반복을 하면서 말야.

비와 아이유

아침 식사를 하고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한참 동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틀 연속이라니, 이제 점점 비가 지루해지려는 참이었다. 마침 하늘도 살짝 열리고 있었고, 바닥의 웅덩이에서도 더 이상 빗방울을 볼 수 없었다. 하긴 24시간이 넘도록 음악을 트는 게 쉬운…

양자역학과 플러그

논리적으로는 콘센트 안에서 플러그를 180도 돌리기 전에 꼽혀야 하는데, 희한한 게 360도를 돌려도 절대 끼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목뼈를 뒤집어 고개를 꺾고 어깨뼈를 접은 불편한 자세로 플러그를 빙빙 돌리고 있자면, 정말 순식간에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오른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Begin typing your search term above and press enter to search. Press ESC to cancel.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