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0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두 번째 대국은 첫 대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어요. 첫 대국에서 예상치 못한 패배를 경험한 이세돌 9단은 1국 때와 달리 훨씬 더 진지하고 비장한 모습으로 대국에 임했습니다. 1국에서는 다소 여유롭고 가벼운 마음이었다면, 2국에서는 인공지능의 벽과 함께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절치부심하는 모습이었죠. 이세돌의 완승을 예상했던 프로기사들도 1국 이후 충격에 휩싸였고, 2국에 대한 전망은 사람마다 널뛰기하듯 달랐습니다.
2국이 시작되었고, 이세돌 9단은 초반부터 실리를 착실하게 쌓아가며 우세를 점하는 듯했습니다. 알파고는 이전 대국과 마찬가지로 아마추어가 둘 법하거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수를 연발하는 것처럼 보였고, 이에 해설진들도 혼란스러워하는 듯했어요. 그러다가 이세돌 9단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알파고는 좌변에 ‘어깨 짚기’를 두었습니다. 이 37번째 수는 ‘Move 37’이라 불리며, 인공지능 영역에서 아주 중요한 이벤트로 간주됩니다.

어깨 짚기는 무조건 좋은 수가 아닙니다. 주변 배석과의 조화를 고려해야 하며, 적절한 타이밍에 사용해야 합니다. 너무 이르게 사용하면 상대에게 반격을 당할 수 있고, 너무 늦게 사용하면 그 효과가 반감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알파고의 어깨짚기는 기존의 바둑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수였어요. 그래서 해설하던 전문가들은 “실수 같다”, “이상하다”는 반응이었고, 이세돌도 그다음수를 두기 위해 10분 이상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사람들은 대국이 진행되며 ‘Move 37’의 진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수는 당장의 이득을 위한 수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판 전체의 균형을 바꾸는 절묘한 수였다는 걸 말이죠. 알파고는 이 수를 통해 이세돌 9단의 집을 효율적으로 견제하고,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는 완벽한 전략을 이행했습니다. 결국 이 한 수로 대국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고, 이세돌 9단은 ‘Move 37’ 이후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패배하게 되었어요. 이세돌 9단은 대국 후 “알파고가 거의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며, “초반부터 한 번도 내가 앞서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로 인해 ‘Move 37’은 단순한 수가 아닌, 인간의 바둑 공식과 직관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의 창의성을 보여준 결정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알고리즘 자체가 창의력에 의한 판단을 수행했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를 기반으로 기존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겠죠. 창의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과감하게 리얼 월드에서 실행해야 그 변화가 만들어집니다.
물론 알파고는 ‘Move 37’ 이후의 여러 경우의 수들을 구조의 특성별로 시뮬레이션하며 해당 수가 수만 개의 시뮬레이션 중 하나를 이행하기 위한 첫 수라고 확신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규칙대로 움직이지 않고 변수가 많은 리얼월드에서 그런 시뮬레이션은 간단하진 않겠죠. 중요한 것은 그 정확도를 떠나서 어느 정도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의지 아래 그 수를 바둑판 위에 꽂는 용기라는 겁니다. 안전한, 예전부터 그렇게 해온, 학습된 진리에 복종하지 않고 그런 결정을 내리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내가 받아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등장 이래 변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모두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발걸음을 디뎌 냈고, 의심하지 않고 그것을 밀고 나갔어요.
저도 이번 프로젝트에서 ‘Move 37’을 두었습니다. 새로운 기능으로 진입하는 진입점을 가장 메인 프로세스 안에 배치한 겁니다. 이 새로운 기능은 비즈니스의 근간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도 있지만, 기존에 누구도 그렇게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이게 뭐냐?’라고 불평을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과거 진행하던 일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기능을 인지하고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했죠. 저는 우리 인더스트리에서 이 변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겁니다.
여러분도 생각하고 있던 나만의 ‘Move 37’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