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d Cafe

Eagles의 ‘Sad cafe’라는 곡이 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언제 즈음, 이 곡으로 꽉 차 있던 적이 있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면 – 어렸을 때는 그런 적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 습관처럼 이곡을 들었다. 이 곡의 도입부는 키보드로 시작되고, 네 마디 후 베이스가 들어오고, 다시 어쿠스틱 기타와 킥 드럼이 동시에 이인삼각으로 내딛는, 별다를 것 없는 구성이다. 그런데, 화려한 프레이즈도 없는 그 덤덤한 열두 마디는 – 이상하게도 – 내가 뭘 하고 있든 바로 그 곡에 집중하게 만들어버렸다. 마치 눈앞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회중시계처럼.


이 곡의 Sad cafe는 미국 L.A의 산타모니카에 있는 트루바도르라는 음악 카페로, 돈 헨리와 글렌 프라이가 애송이 시절에 이곳에서 만나 후에 Eagles를 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참 이 곡을 들을 때는 ‘L.A에 가면 꼭 트루바도르에 가봐야지’ 했었지만, 시간이 꽤 흘러서 그런지 정작 L.A에 갔을 때는 생각도 안 났었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보나 마나 후줄근한 카페일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별것 아닌 음악적 견해로 싸우기도 하고, 솜털 같은 능력으로 우쭐대며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하는 세상을 비웃었겠지. 물론 나중에는 다들 거장이 되었지만, 그런 시기는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잃을 것 없던 그때가 가끔은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나는 착한 성격이라 세상을 비웃었던 기억은 없지만, 그런 장소는 있었다. 지금 놀이터와 주차장이 들어서 있는 홍대 옆 극동방송국에서 한 두 블록 아래 골목에 있던 블루스 하우스가 그곳이었다. 담 위에 멋대가리 없이 올려 둔 검은 간판 뒤의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 자욱한 담배연기 뒤쪽으로 커다란 비틀스 액자를 볼 수 있던 바였다.
나는 늘 그 액자 아래 소파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그곳에는 언뜻 봐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는데, 나도 그곳을 꽤 오래 드나들었고 그녀도 계속 일을 했지만 서로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었다. 물론 그곳은 음악을 늘 크게 틀었기 때문에 대화가 불가능하기도 했다. 나는 늘 손가락으로 메뉴 중 하나를 가리켰고, 그녀는 비웃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미소로 O.K사인을 보냈다. 가끔 두 음료 사이를 애매하게 가리키면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턱을 살짝 들었다. 그 표정이 재밌어서 가끔 애매하게 메뉴판을 가리켰다는 것을 고백한다. 갑자기 그때 생각을 하니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한번 그 근처를 가볼 기회가 생겼는데, 그 카페는 같은 이름으로 맞은편의 건물 지하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봤지만 토끼굴 같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금방이라도 컨트리 음악이 흘러나올 법한 웨스턴 바로 변해 있었다. 다이얼스트레이츠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긴 했지만 김이 새서 그냥 다시 올라와버렸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슈퍼밴드 2의 여파로 최근 돌려 듣는 올드락 넘버 플레이리스트 중에서 갑자기 이 곡이 떠오르는 바람에 – 치매환자가 약물치료로 과거 기억의 일부를 되찾듯 – 그렇게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는 이야기. 한 가지를 더하자면, 이 곡과 LANY의 ILYSB를 번갈아 들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가히 시대를 뛰어넘는 슈퍼 콤비네이션이라는 생각인데, 아니면 말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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