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를 아시는지?
이건 너무 비약적인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예전만큼 라디오를 찾아 듣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거다. 공중파 방송이 OTT 서비스에 밀리듯, 라디오도 스트리밍 서비스에 그 자리를 내어준지 꽤 오래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나도 일부러 찾아 듣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 들을 기회가 되면 꽤 집중해서 듣게 되는 라디오만의 매력은 뭘까?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재미일 수도 있다.
혹시 청취자들이 디제이에게 –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브로드캐스팅하듯, 천문학자가 수신기약 없는 메시지를 외계로 송신하듯 – 보내는 귀여운 사연을 들어본 적 있으신지? 세상은 복잡해졌지만,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일면식 없는 사람들과 공유할만한 메시지는 놀랄 정도로 변화가 없다. ‘일터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을 아이 아빠에게 파이팅을 전하고 싶어요.’류의 응원 메시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며칠 전 심한 말로 여자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했어요.’같은 후회 섞인 푸념, ‘벌써 9월도 한참 지났는데 날씨가 너무 더운 거 아닌가요!’ 하는 짜증이 담긴 혼잣말까지… 그런 평범하고 별것 아닌 사연들에 – 쇼핑몰의 운영자가 QnA에 답변을 달듯 – 성실하게 반응하는 디제이 때문에 라디오의 채널을 쉽게 돌릴 수가 없다.
매일 그 자리에서 누군지 모를 청취자들을 위해 사연을 읽어주고 음악을 들려주는 직업이라니. 그 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알 수는 없겠지만,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 한쪽을 친구에게 꽂아주는 것과는 많이 다르겠지. 어쨌든 그것도 직업이니 말이다. 누구나 가끔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직업은 하루에 한 시간 동안만큼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멘트에 반응하고, 듣기 싫은 음악이라도 들어야 한다. 마치 하루 종일 남의 이빨만 들여다봐야 하는 치과의사처럼… 그러고 보면 아무 때나 담배 한 개비 들고 바깥으로 나가는 게 가능한 회사원은 생각 외로 꽤 여유 있는 직업일지도 모른다.(개인적으로 흡연자를 좋아하지는 않음)
하지만 누가 뭐래도 라디오의 매력은 음악이다.
‘다음번에는 어떤 곡이 흘러나올까?’ 하며 별 기대 없이 기다리는 여유가 마음에 든다. 스트리밍 서비스에 생성해놓은 플레이리스트나 알고리즘의 큐레이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른 매력, 계속 음악에 구속될 필요가 없는 자유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가끔 내가 좋아하는 곡이 흘러나올 때의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집에서는 늘 누워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듣거나 유튜브만 보게 되는 요즘이지만, 그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몸이 어느 정도까지 더 편해져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내겐 이미 라디오를 듣다가 우연히 귀에 들어오는 곡 덕에 새로운 아티스트를 알게 되고, 그의 음반을 찾아 듣고, 다시 그와 그의 음악에 관계된 서사를 알게 되고, 아티스트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가만히 있어도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들이 주변에 넘치고, 상향 평준화된 콘텐츠의 숲 속에서 나무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질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이다.
귀에 들리는 음악들은 모두 마음에 들지만 누구의 곡인지, 제목은 무엇인지 신경 쓰지 않는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처럼, 장대비에 떨어지는 가로수 잎처럼, 그렇게 무심하게 흘려보낸다.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지만 이름을 물어보려 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런 지금이 더 행복한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결여와 그 대안을 알고 있는 나도 이전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더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더 편하긴 하다. 강물에 몸을 맡겨 바다로 떠내려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 오늘처럼 다시 반갑게 만나볼 수 있도록, 오랫동안 라디오가 늘 그 자리에 지금처럼 있어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