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소름

‘오늘 아침 회의 때 혹시 제 왼쪽 손목에서 팔찌를 보셨어요?’

오전에 함께 회의를 했던 동료가 물었다. 평소 사람들에게 주의력이 평균 이하라는 평가를 받는 내게 물어본다는 건 분명히 고양이 손이라도 더하고 싶은 긴박한 상황이라는 거다.

‘글쎄. 특별히 손목을 보진 못했지만, 앉아있던 쪽 근방에서 무언가가 반짝거린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 보아뱀이라도 두르고 있었다면 모를까 회의 중에 참석자의 손목에 시선이 갈 리는 없다. 

‘음, 저도 못 본 것 같아요.’ 다른 동료도 나와 같은 의견이었다.

‘그런데, 비싼 거예요?’

‘엄마가 사주신 순금 팔찌예요. 아주 비싸진 않지만, 싸구려는 아니죠.’

‘찾을 가치가 있다는 거네. 그렇다면 먼저 집에 있는지 어머니께 한번 연락해보면 어때요?’

‘팔찌가 집에 없다면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실 테니까 그건 싫어요.’ 단호했다.

‘마음의 안정보다는 착한 딸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는 거고.’

‘그것 보다는 정신머리 없는 딸내미가 되기 싫은 정도랄까요?’ 

‘똑소리 나는 착한 딸인 걸로. 물론 회의실이나 화장실은 이미 찾아봤겠죠?’

‘그럼요. 게다가 분명히 아침에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탈 때 손목의 팔찌가 흔들렸던 기억이 아련하게 있어요. 그리고, 출근하자마자 어디도 들르지 않고 바로 회의에 참석했고요.’ 버스를 탈 때 팔찌가 있었고, 아침 회의 때는 그걸 누구도 보지 못했다면 그 사이에 잃어버렸을 것이다. 

‘확실해요? 그게 어제 기억일 수도 있잖아. 기억이라는 건 생각보다 부정확하다고요. 게다가 아련한 기억이라는 게 좀…’

‘확실해요! 저는 아련했던 첫사랑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또 언제 끝났는지도 명확히 이야기할 수 있다고요.’ 그래 봤자 우리는 확인할 수도 없다. 그녀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주일 넘게 계속 그 팔찌를 하고 있었어요. 샤워할 때도, 잘 때도. 그래서, 최근에는 팔에 팔찌가 있는 게 익숙했다니까요. 오늘 아침까지는 분명히 손목이 허전했던 적이 없었어요.’ 팔찌를 왜 잘 때도 하고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이 시점에서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혹시 버스에서 잠들었어요?’ 동료는 가설을 세우기 위한 사전조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잤어요. 하루도 빼놓지 않고. 혹시 자는 동안 누군가가 제 손목에서 그걸 풀어 갔을까요?’

‘훔칠 의도는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김대리가 맘에 들어서 팔찌를 주운 척하고 말을 걸어보려 했을 수도 있죠.’ 창조된 ‘누군가’는 이미 가설 속에 자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럴 의도였는데, 결국 그는 김대리보다는 팔찌를 선택했다?’ 어쨌든 이 가설이 성공하려면 이 결론뿐이다.

‘… 그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어머님께 먼저 전화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집에 있을 것 같아.’ 의식이 있는 상황에서 팔찌가 달아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집에 없다는 것이 확실해진다고 해도, 버스 속의 그놈을 처음부터 도둑놈이라 생각한다면 그렇게 자존심 상해할 일도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동료가

전화를 했는데 어머님께서 ‘무슨 소리야. 난 너한테 팔찌를 사준 적이 없는데?’하면요?

하고 이야기했고, 순간 우리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

등골이 오싹해졌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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