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엄청나게 신 귤

우리 애는 관리 중이라 늘 배가 고픈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출출할 때는 늘 애가 소파 위에서 자고 있을 때 방에 가서 조용히 문을 닫고 간식을 먹는 편이다. 어제도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는 녀석을 분명히 확인하고는, 몰래 냉장고에서 귤을 꺼내 방으로 들어갔다. 요즘 왜 이렇게 저녁에 배가 고픈지…

조용히 껍질을 까는데 집중하다가 느낌이 쌔 해서 문쪽을 바라보니, 문 앞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 녀석.

‘줄 거지..?’

하는 천진난만한 표정 있잖아. 일단 들킨 이상, 나를 보는 저 처량한 시선을 마주 한 이상, 주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나는 귤 한쪽을 반으로 가른 후, 그 순간에도 ‘손’, ‘하이파이브’, 그리고 ‘엎드려’를 시켰다. 녀석은 정말 온 힘으로 ‘엎드려’를 했다. 그건 분명히 진심의 ‘엎드려’였다. 바닥이 나무가 아니라 스티로폼이었다면 몸통이 한 반쯤은 바닥 밑으로 눌려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귤 반쪽을 아이의 입에 밀어 넣어 주고는, 나머지 귤을 재빠르게 내 입에 털어 넣었다. 내가 귤을 모두 삼키자 녀석은 이제 볼일 없다는 듯이 다시 거실로 종종 걸어갔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입천장을 모두 녹여버릴 것 같은 귤의 산에 몸서리치고 말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신 귤은 처음이었는데, 이 정도면 몸무게가 나의 1/14 밖에 안 되는 강아지에게는 치명적이지 않을까?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그날 계속 녀석이 자고 있던 거실 소파 밑에 누워서 밤 새 제대로 자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한잠도 못 잤다는 이야기. 

(아무래도 강력한 산이 식욕을 돋웠는지, 그 아이는 밤새 푹 자고 일어나 엄청난 양의 아침을 먹었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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