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기아스와 꼬인 이어폰 줄

‘이게 정말 가능한 건가?’

하지만, 분명히 내 주머니 안에서 발생한 일이다. 아침에 분명히 멀쩡한 이어폰 줄을 예쁘게 돌돌 말아 주머니에 넣었는데, 꺼내보니 오분 이내에는 풀지도 못할 정도로 심하게 꼬여있는 거다. 이어폰 줄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 해도 저 정도는 불가능할 텐데? 극단적인 마조히스트라 해도 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저 정도까지 옭아맬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저 정도면 자살시도라고!

아마도 오전에 잠깐 외투를 옆에 벗어두고 다른 일을 할 때였을 거다. 실뜨기에 일가견이 있는 제삼자가 몰래 이어폰을 꺼내 한참 동안 집중하며 창의적으로 꼬아서는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은 거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 외에는 생각나는 다른 가설이 없다.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해도 단서조차 찾을 수 없는 이 기이한 현상을 접하고 보니, 뭔 소린지 모르겠던 고르기아스의 ‘존재란 있을 수 없고, 있다 해도 지각할 수 없으며, 지각이 가능하다 해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없다’는 ‘존재에 대한 회의’가 선명하게 이해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그도 혹시 같은 경험을?

하지만, 그때에는 분명히 이어폰이 없었을 텐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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