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 껍질 부각과 죽음의 문턱

얼마 전에 스키장에 갔다가 근처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온 황태 껍질 부각을 먹게 되었는데, 짭짤한 것이 꽤 맛있었다. 약간 바삭거리는 식감이어서 반찬이라기보다는 과자 같았다. 그 식당은 황태해장국 전문이었는데, 해장국보다는 그 부각이 더 기억에 남았다. 그 이후로 잊고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황태 껍질 부각 간식을 선전하는 걸 보게 되었다. 겉봉지 위에 콜라겐의 황태자라는 선전문구가 이름보다도 크게 쓰여있었다. 콜라겐이 들어있었구나. 몰랐었다. 나는 그 짭짤했던 맛이 떠올라 세 봉지를 주문했다. 심심할 때 주워 먹기 딱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콜라겐까지 들어있는 것이다.

배송되어온 황태 껍질 부각은 노래방 새우깡 정도의 크기로 생각보다 꽤 컸다. 나는 봉지를 열자마자 손으로 한 움큼을 쥐어 입으로 털어 넣었다. 갓 튀긴 것처럼 바삭한 부각은 스키장 근처 식당에서 먹었던 바로 그 맛이었다. 그런데, 말린 생선이라 그런지 입에 넣고 씹으니 물기 때문에 금방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튀긴 것이라 잘게 부서져서 부피가 더 금방 커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별생각 없이 입 안에서 파편화되어 부풀어 오른 황태 껍질 덩어리를 목구멍으로 넘기기 위해 꿀떡 삼켰다. 삼키는 순간 ‘이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목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고, 바로 – 부각이 기도로 들어갔는지 – 엄청난 사래가 걸리고 말았다.

‘콜록콜록…’

콜록은 감기인가? 하여간 나는 엄청난 기침을 연달아하고 말았다. 보통 사래가 걸리면 한두 번 큰기침을 하고 눈물 조금 흘리면 끝났던 것 같은데, 그때는 아무리 기침을 해도 진정이 되질 않았다. 내가 목구멍 속을 들여다볼 순 없지만, 분명히 기도 안쪽으로 눈덩이 같은 같은 부각 덩어리가 넘어간 것임에 틀림없었다. 위로 내려가야 할 그 부각들은 길을 잘못 들어 기도로 들어선 후 중력에 의해 폐로 내려가고 있었을 거다. 나는 그것들을 다시 목구멍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미친 듯이 기침을 했다. 그런데, 양이 엄청나서 그런지 기침을 한다고 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아무래도 부각들이 파편화가 되어 폐 벽에 다닥다닥 붙어버린 것 같았다. 사래는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시계를 보니 벌써 20분째 기침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기침이라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이었나? 내가 뭘 얻으려고 이렇게까지? 갑자기 주마등처럼 내 삶의 주요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쳤어…’

이제는 부각은커녕 폐 속의 공기도 바깥으로 밀어내지 못할 것만 같은 기침을 하면서, 나는 기침이 지겹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 기침보다 지겨운 게 있을까? 아니야 없어.’

‘인생만큼이나 지겨운 거야 기침은…’

‘아, 인생이 지겨웠던가?’

‘내가 지금 지겨운 인생을 이어가기 위해 지겨운 기침을 하고 있는 거구나.’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거 아닌가?’

그 순간 나는 – 폐에 부각이 남아 발아가 되던 말던 – 기침을 하기 위한 노력을 멈춰버리고 말았다. 뇌는 기침이 필요하다는 시그널을 계속 보내오고 있었지만 무시해버렸다. 속은 여전히 답답했지만 다행히 기침을 멈출 수는 있었다. 만약, 기침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그대로 영면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나는 지쳐있었다. 정말 누구라 해도 20분 내내 전력으로 기침을 했다면, 동일한 판단을 내렸으리라 생각한다. 20분 내내 전력으로 한 기침은 입시를 위해 3년 공부를 한 것과 맞먹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재수를 결정했던 사람이라면 조금 더 할 수도 있겠지만…. 한 이틀이 지나니 잠을 잘 때 부각 조각이 목구멍으로 흘러나왔는지 그때보다는 속이 조금 괜찮아졌다. 어쩌면 폐가 음식을 소화시키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아침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황태 껍질 부각의 위험성에 대해 열변하고 있었다. 간식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던 경험에 친구들은 경악을 했다. 한 친구는 내가 한층 더 성숙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런 경험을 하고도 성숙해지지 않는다면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인간이겠지. 그런데, 다른 친구가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20대 초반 즈음 선배 결혼식에 갔었다고 한다. 식사로 스테이크가 제공되었는데, 꽤 크게 썰었던 모양이다. 입에 가득 넣고 씹는 것을 즐기는 타입인 것 같았다. 그런데, 다음 조각을 빨리 먹고 싶어 대충 씹어 넘겼는데, 그게 목구멍에 걸린 거다. 물을 마셔도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고 다시 입으로 흘러나왔단다. 그 정도로 고깃덩어리가 목에 꽉 끼었던 거였다. 차려입고 간 결혼식에서 모두가 보는 가운데 하임리히법으로 목구멍에서 고깃덩어리가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화장실로 걸어 들어갔다고 한다. 정말 위험한 판단이었다. 그녀는 목구멍에서 고깃덩어리를 발사하는 것과 화장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는 것 중 어느 게 덜 창피한지 판단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졌다.(삶과 죽음도 구분이 가지 않았나 보다.) 변기에 기대 있던 그녀는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이승에서의 마지막 움직임이라 생각하고는 침을 크게 삼켰다. 그런데, 그 순간 고깃덩어리가 쑥 내려갔다.(할렐루야) 목숨을 건진 그녀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계속 식사를 했다는 이야기.

순간 사람들을 쓱 둘러보니 이미 황태 부각 사건은 모두 잊은 듯했고, 그녀의 고깃덩어리 사건에 매료된 것 같았다. 누군가는 마치 모파상이 쓴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도 했다. 모파상은 ‘비계 덩어리’인데…

그리고,

고깃덩어리가 기도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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