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경제

회사 친구가 약속이 꼬였다고 부탁을 해서, 친구 대신 새로 온 인턴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IT전공이고 휴학 중이라는 그녀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하면서 내게 현재의 일을 하기 위해 대학 때 어떤 준비를 했냐고 물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처해지는데, 진심으로 이야기해줄 만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질문을 회피하는 데 베테랑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앞으로는 이런 때를 대비해서 뭔가 스토리를 준비해두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아직 그런 준비는 되어있지 않으니 화제를 돌려야겠어. 

– 그런데, 집에서는 유튜브를 본다고 했죠? 사실 구독 경제는 요즘 비즈니스의 화두 중 하나죠. 

‘구독 경제요? 넷플릭스 같은 거죠? 유튜브도 그렇게 분류되나요?’

– 광의로 해석하자면 SNS 서비스들도 그렇게 볼 수 있죠. 팔로우는 구독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사용료를 내지는 않잖아요?’

갑자기 던진 화두에 논리가 있을 리 없지. 그래도,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면 된다. 여기서 멈칫거리면 내 인생이 너무 가벼워 보일 수 있어. 게다가 나는 이런 것을 엮어대는데 꽤 소질이 있다. 소개팅할 때 상대의 주변 사람들과 내 주변 사람들을 연결하거나, 상대의 취미와 전혀 다른 내 취미의 교집합을 찾아내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나도 대학 때 뭔가 한 게 있긴 있다.

– 맞아요. 하지만, 퀄리티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용자는 콘텐츠 프로바이더로 인정받게 되고, 소비자들은 지속적으로 가치 있는 콘텐츠를 제공받기 위해 그 사람을 구독하잖아요. 물론 구독자에게 직접 사용료를 받지는 않지만, 그 수가 많으면 그 생산자 계정은 돈을 벌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거예요. 광고주들이 생산자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바로 구독자 수거든요.

말하는 중에 순간적으로 언젠가 자주 보는 연예 정보 채널의 홍보영상에서 유료 멤버십 등록을 하면 굿즈를 보내준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영화 기록용 메모노트가 예뻐서 솔깃했었지.

– 그리고, 얼마 전 유튜브에도 채널 멤버십이라는 구독제 유료 서비스 기능이 추가되기도 했고요.

 ‘아. 그렇구나.’

적절했어! 사회 첫걸음을 내딛는 초년생에게 생각 없이 살아온 내 인생을 고백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 그런데, 사실 구독자를 늘리는 게 정말 쉽지 않죠. 경쟁자들은 많고, 콘텐츠의 메인 노출을 결정하는 큐레이팅 로직은 오픈되지 않으니까.

친구의 추천으로 인스타그램에 계정을 만들고 삼 년 동안 열심히 그림을 그려 올렸지만 아직 400 팔로워도 안 되는 현실을 생각하며 쓴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근데 저는 그냥 유튜브 계정을 만들고 남의 영상 몇 개 주워다가 올려뒀더니 5000 팔로워 넘었다고 메시지가 오더라고요. 얼마 전에 구글에서 10만 원인가? 찾아가라고 또 메일이 왔던데….’


..

엄청

부러웠다

‘아. 그런데, 지금 일을 하시려고 대학 때 어떤 준비를 하셨던 거예요?’

아…. 아앗…!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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