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같은 부서에서 일이 년 남짓 함께 일을 했던 친구가 있었다. 기획 쪽 일이라는 게 전 부서를 상대해야 하다 보니 이런저런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그럴 때마다 그 상황을 함께 해결해나갔던 전우 같은 친구였다고 할까? 퇴사한 이후에도 종종 만나 저녁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늘 그 자리에 고인물처럼 눌러앉아있던 나와는 달리 그녀는 만날 때마다 일하는 곳이 달라져 있었다. 

‘종로 쪽이니까 그쪽에서 볼까?’
‘저 지금 일하는 곳은 분당인데?’

‘일하는 곳이 분당이니, 양재 쪽이 편하지?’
‘지금은 용인에서 일해요!’

변화를 수동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하는 상황으로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그녀에게 ‘변화’는 스스로 기회를 찾고 선택하는 주체적인 단어였다. ‘어쨌든, 잘 될 거야.’ 하는 자신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낙천적인 성격으로 대변되는 그녀. 늘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내게 그녀는 늘 연구대상이었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부터 제주도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일자리뿐 아니라 거주지까지도 이전해야 하는 큰 결정이다. 


미국에 공부를 하러 가게 됐을 때, 나는 학교와 관련된 일처리에만 신경을 썼었다. 그 이전에 스스로 거주지를 옮기는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큰 일이라는 생각을 못했던 거다. ‘집을 구하는 동안 머물 호텔은 일주일이면 충분하겠지?’ 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샌프란시스코에서 연고 없는 외국인이 집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겨우 찾아 신청서를 접수시켜도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그곳에는 늘 공급보다 수요가 넘쳤으며, 신청서를 접수시키는 사람들 중 가장 신원이 불확신 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천신만고 끝에 집을 구했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이후에도 필요에 따라 가스를 신청하고, 인터넷을 가입하고, 뱅킹 어카운트를 만들어야만 했다. 물론 쉬웠던 일은 하나도 없었다. 서비스 콜센터에서는 ‘당신은 우리의 가장 소중한 고객입니다’라는 자동 멘트를 끝없이 반복했지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천대받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전 준비 없이 불편한 상황에 등 떠밀려 움직이다 보니 모든 일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부끄러웠던 경험. 다른 건 몰라도 어른과 아이의 경계는 살아온 개월 수 만으로 쉽게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다.


얼마 전이 그녀의 생일이어서 간단히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그녀가 갑자기 ‘저 제주도가 너무 좋아서 쭉 여기에 있으려고요.’ 한다. 그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계획했던 것보다 오래 있고 싶은가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기서 터를 잡고 살려고요!

그건 특정 목적으로 어딘가에 잠시 머물다 올 결정을 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어른의 결정이다. 나도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 샌프란시스코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머릿속 회로 끝의 의사결정 후보 리스트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옵션이다. 그런 건 등에 메고 걷기도 힘든 짐을 올리는 결정이니까. 하지만, 그녀가 한참 후에 뒤돌아 본다면 꽤 멋진 인생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만 같다. 자전거를 사거나, 주식에 투자를 하거나, 별 볼일 없는 유튜브 채널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멋지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어른 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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