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리의 브이로그, ‘거기가 여긴가’와 행복

얼마 전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행복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날마다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였다. 결론은 그랬다. 짧은 수명에다가 죽으면 영원히 소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불행하기까지 하면 그건 너무 슬프니까. 오랫동안 참았다가 얻게 되는 큰 행복보다는 조금씩이라도 매일 행복한 것을 택해야 한다는 건 오랜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얻게 된 나의 소중한 인생철학이기도 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쟁여두었던 대작들이 천천히 극장가에 걸리고 있었고, 마벨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도 그중 하나였다. 영화 속에서 지구는 정신없는 판타지 속에서 다시 한번 위기에 빠졌고, 영웅들은 천신만고 끝에 그 상황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일촉즉발의 시기를 보낸 후, 그들 중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지구를 구해서) 행복하냐고 물었다.

세상을 구해서 사람들은 행복 해졌겠지만, 나까지는 아닌 것 같아
I thought saving the world would make one happy But, it didn’t make me happy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가슴에 생겨버린 커다란 구멍은 아무리 모래를 들이부어도 메워지지 않을 테니까. 인류를 구원하는 건 물론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것을 위해 인고와 희생으로 점철點綴된 일상을 보내야 한다면 누가 그 인생을 행복하다 할 수 있을까? 행복이라는 건 크기가 아니라 빈도가 중요한 이유다.


배우 김태리가 얼마 전 긴 드라마 촬영을 마친 후 자신의 촬영지를 돌아다니며 4부작 브이로그를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준 팬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이 여행을 기획했다고 했다. 그 영상은 칠 개월 동안 드라마에 몰두했던 그녀가 종영 이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사일 동안 행복을 찾아다닌 기록이었다.
영상 속의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사일 동안 그녀는 배고프면 식당을 찾고, 외로우면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기분이 좋으면 피리를 불었다. 그리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촬영지에서 옛날을 추억하고, 함께 작업을 했던 이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는 내내 그녀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했고,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런 평범한 클립을 시청하고 있는 나도 – 그녀만큼은 아니겠지만 – 행복해졌다.  

김태리의 ‘거기가 여긴가 #1/4’

나는 행복한 마음이 들 때마다 항상 슬픔이 같이 와요. 너무 행복한데 그래서 슬퍼. 왜인지는 모르겠어.

그녀는 영상 속에서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건 이 행복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그리고 어느 순간 더는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거다. 인간은 태어난 후 줄곧 죽음을 향해 걸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으며, 누구도 그것을 거스를 수는 없다.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세상 속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소멸로 귀결되는 운명이다. 


사실 나도 어떻게 살아가는 게 최선인지 잘 모른다. 머리를 비운채로 산을 오르듯, 오래 달리기를 하듯,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단지 그런 하루하루가 지루하거나 외롭기보다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 그런 고민 중에 보게 되었던 그녀의 브이로그는 내가 무엇에 집중하며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보여주고 있었다. 행복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뭔가 시간은 남는데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느긋하게 김태리의 브이로그를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해당 브이로그의 인트로를 보면 그녀가 우는 장면이 있는데, 정작 본 영상에서는 볼 수가 없었네요. 집중해서 본 것 같은데 혹시 놓친건가? 휴.. 내 집중력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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