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풀 속에서 In the tall grass

영화나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 미스터리물이나 SF물이라면 껌뻑 죽는 분들 계시죠? 사실 저도 그래요. 그런데, 왜 좋아하시는 건가요? 보는 내내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는 로맨스물도 있고, 우울한 것 다 잊게 만들어주는 코메디물도 있고, 등골 오싹하게 해주는 스릴러물도 있잖아요? 

저는 미스터리물이나 SF 물을 볼 때는 다른 장르를 감상할 때와는 태도가 꽤 다릅니다. 다른 분들도 그러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약간 증명해야 하는 수학 문제를 푸는 듯한 느낌으로 감상하거든요. 정말 그렇게 봐요. 첫 장면부터 세계관이나 설정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한다니까요? 그렇게 처음에는 안갯속에서 퍼즐 조각을 집어 올리듯,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느낌으로 스크린을 들여다봅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갑자기 초입방체의 전개수의 개수를 구하라 한대도, 저는 바로 그 문제를 풀기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이미 머리는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는 상태거든요.  


‘높은 풀 속에서’는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2019년 작 미스터리물입니다. 이 감독의 다른 작품 중 조금 익숙한 것 중에 ‘큐브(1997)’가 있죠. 정육면체의 방 안에 갇혀 깨어난 사람들의 탈출기. 저는 이 작품도 분위기가 독특해서 꽤 좋아했었습니다. 빈센조 감독의 영화에는 유독 맥거핀 Macguffin이 많은데, 그 덕에 영화를 본 이후에도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됩니다. 물론 영화를 본 사람들 간의 논쟁은 기본이죠. 논리적 뼈대나 설정이 명확한 상태라면 의견들은 점점 하나로 모이게 되고, 그런 게 또 영화 감상 이후에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설정이 애매한 작품도 많은데, 저는 그런 경우를 만나면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에요. 퍼즐은 맞추라고 있는 거 아닌가요? 

‘높은 풀 속에서’는 후자에 가까워서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기분이 들어요. 수학 문제를 앞에서부터 증명하다가 막혀서, 다시 뒤에서부터 끌어오다가 또 막히고. 결국 나로서는 그 둘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절망감이랄까? 그 이야기는 조금 뒤에서 풀어볼게요.

스티븐 킹과 그의 아들 조 힐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임신한 아이를 키워줄 사람에게 넘겨주기 위해 샌디에고로 향하던 베키와 그녀의 오빠 칼은 들판에서 도와달라는 한 아이의 외침을 듣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향해 풀숲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안에서 길을 잃게 되죠. 여기에 다시 베키를 찾아 나섰던 아이의 아버지인 트래비스도 그 숲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공포를 극대시키기 위해 억지스럽게 공간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외딴 오두막 지하의 고문대나 그 주변에 널려있는 해골 따위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주인공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풀숲에서 보내게 되는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배경의 변화가 아닌 캐릭터들의 심리적 상황의 전이로 만들어내고 있어요. 덕분에 관객은 초반에 평화로움을 느꼈던 바람이 부는 풀숲에서, 중반부에는 공포감을 느끼게 됩니다. 풀숲에는 단지 같은 바람이 불 뿐인데 말이죠. 이런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초반부는 이런 풀숲이라는 제한적인 공간 안에서 관계에 의한 갈등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여러 이유로 풀숲에 진입하게 된 캐릭터들은, 길을 잃기도 하고 헤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도 하죠. 그러다가 중반 이후 풀숲 중앙의 바위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초자연적 미스터리물로 진화하게 돼요. 

타임루프나 평행이론을 다룬 영화들은 꽤 많습니다.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 해당 이론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논리구조를 만들어둡니다. 어쨌든, 인과관계의 설명은 가능해야 하니 말이죠. 그런 설정들이 명확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까이게 되잖아요? 평행우주론의 어벤저스를 보며 ‘분화한 우주는 실제 관측 결과가 일어난 우리 우주와 영영 물리적으로 떨어져서 서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물리학자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논쟁이 벌어지는 건 어느 정도 이론적인 프레임웍이 정리가 되어있기 때문이에요. 그 안에서 작은 오류를 찾는 건 재밌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관객의 머릿속에 정리되어야 하는 논리구조의 형체가 아예 없어요.(물론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뭔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단편 소설을 두 시간짜리 영화로 늘리려니 감독도 이런저런 설정들을 더 집어넣을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우선 주인공들의 관계부터 꼬여 있어요. 풀숲에 제일 처음에 들어가 있는 줄 알았던 꼬마 토빈이 가장 마지막에 들어선 트래비스에 의해 엮였다는 것을 시작으로, 같은 공간 안에서 여러 명의 자신을 만나게 되고 시간적으로도 뒤죽박죽으로 얽혀버립니다. 그런 이유로 중반 이후에 관객들은 마치 n차원의 퍼즐 조각을 넘겨받는 느낌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거기에 풀 얼굴을 한 원시인이나 돌 주변의 초자연적 터널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생각하게 되죠.

‘오컬트로 정리가 되겠구나.’

이런 난해한 구조 속에서 어느 정도 공감할 만한 결론을 이끌어 내려다보니 영화의 후반부는 전개의 개연성이 더 떨어지게 됩니다. 베키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트래비스를 공격하는 칼은 좀 어이가 없을 수도 있죠. 아마 – 감상 중간에 갑자기 온 메신저에 답변을 하거나, 택배를 받거나 하면서 –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셨던 분이라면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받으실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영화가 초반부터 분위기나 캐릭터 간의 관계에 신경을 쓰며 이끌어와서 그런지, 몰입해서 보고 있었다면 생각보다 그런 부분이 이해가 가기도 하거든요. 어쨌든 몰입감만큼은 정말 엄청납니다. 

사실 영화의 배경이나 등장인물 자체가 작품을 견인할 만한 스케일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구조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잘 풀리는 퍼즐 같은 구조는 오히려 영화가 보잘것없어 보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뻔하잖아요? 그래서 감독은 초반 분위기로 관객을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후반부는 오컬트적 비논리와 폭풍 같은 스피드로 그들의 입을 틀어막는 작전을 사용합니다. 저는 그 작전이 깔끔하게 먹혀들어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다들 숨죽이고 집중했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이 정도 작품이라면 – 신선지수를 감안해서 – 미스터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추천을 드려보고 싶네요. 저는 천천히 원작도 한번 읽어보려고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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