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Duet with 규현) – 박재정

이별한 두 남자의 절규라고 하면 마치 서로 사랑했던 두 남자의 이야기라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각자 이별한 남자끼리의 대화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고, 텅 빈 거리에서 택시에 오르고, 배가 고프면 식사도 하고. 이별 후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도 거짓말처럼 삶은 계속 이어진다. 하루의 조각만 들여다본다면 헤어진 상황을 알아채기도 힘들 정도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계단처럼 밟아 오르다 보면 ‘그래도 살아져. 생각보다 참을만하네’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집 근처 바에서 혼술을 하다가 똑같이 이별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남자끼리 이런 눈빛 대화를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가사는 개궁상 이긴 하지만 그래도 듣고 있으면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먹먹해지는 건 – 무심한 박재정의 목소리도 한몫하고 있지만 – ‘규현’의 그 부드러운 목소리 때문일 거다. 규현의 버터 바른 듯, 힘 뺀 바이브레이션은 백지영의 그것 만큼이나 슬프고 슬프니까. 그의 음색은 성시경과 비슷하면서도, 그와는 또 다른 부드러움과 슬픔의 아이덴티티가 있다. 특히 클라이맥스의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슬픈 바이브레이션은 그의 노래를 듣는 모든 사람들을 지금 자신이 연인과 헤어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버린다. 

오분이 넘어가는 곡이지만 생활밀착형 가사와 이들 음색의 묘한 캐미로 마치 일절만 있는 곡처럼 훅 지나가 버리고 마는데, 서로 주고받는 부분은 이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 남남곡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멋지다.(서로 주고받는 남남곡 자체도 별로 없긴 함) 특히 극 후반부 규현이 내지르는 ‘잘하면 되는데 어려워’ 부분은 마치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곡이 끝난 후에도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되는데,

되는데,

되는데,

내가 지금껏 음악에서 들었던 ‘데’ 발음 중 단연코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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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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