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청소기와 자연의 섭리

편안한 삶을 위해 로봇청소기를 영입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당시에는 정보도 별로 없고 브랜드나 제품이 다양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가장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의 상위 모델을 선택했었다. 나름대로 그 당시에 홈 와이파이에 연결되어 앱으로 원격 조정도 가능했으니 꽤 신박했었던 기억.

그렇게, 21세기에 처음 집에 들인 우리 집 로봇의 이름은 ‘에드워드’였다. 

조금 시끄럽긴 했지만, 세팅해 둔 시간에 스스로 묵묵히 청소를 시작하는 모습이 꽤 든든했다. 에드워드는 비가 오든, 흐리든, 눈이 오든 상관없이 주말 오전 9시만 되면 충전독을 밀어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소를 하다가 배터리 부족으로 충전하러 돌아오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나도 일을 꽤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피곤하면 그대로 누워 유튜브를 보거나 딴짓을 한다. 적어도 책임감만큼은 나를 능가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능력은 내가 위) 그렇게 든든한 일꾼이었던 에드워드가 최근…

단차가 있어 평소에는 알아서 피해 다니던 현관 신발장 앞에 내려가서는 – 다시 올라오지 못하고 – 배터리가 소진될 때까지 돌바닥을 쓸고 닦는다던가…

이전에는 문턱이 있어 알아서 피해 갔던 창고로 진입해서는 앞 뒤로 수백 바퀴 돌며 장렬히 전사하질 않나…

주방 옆 베란다로 넘어가서는 배터리가 다할 때까지 바닥 물광을 내는 경우가 잦아졌다. 

언젠가는 삼켜서는 안 되는 내 애플 펜슬을 교묘하게 빨아들인 적도 있다.(경악)

위처럼 집안의 트랩에 걸리지 않고 청소를 마치더라도, 에드워드는 다시 충전독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해 거실이나 방 한쪽 구석에 방전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덕분에 자전거를 타다가 집에 돌아오면 먼저 스스로 방치되어버린 에드워드를 들어 – 더럽게 무거움 – 충전독에 거치시키는 게 루틴이 되어버렸는데, 이때 생각보다 기분이 복잡했다. 윤종신의 ‘이별의 온도’같은 미드 템포의 곡이 흐르고 있었다면 눈물이 흐를지도 모른다.

동일한 하드웨어에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되면 사람처럼 치매에 걸린 듯 행동하게 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이런 자연의 섭리가 인간이 만들어 낸 디지털 기기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게 놀랍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면 우주는 모든 것에 꽤 공평하다. 


어쨌든,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서는 무거운 에드워드를 들어 옮길 생각을 하고 집에 들어섰는데..

이렇게 청소를 마치고 충전독에 제대로 가서 쉬고 있었다.(감동) 죽기 전에 정신이 맑아진다던데… 어쨌든, 조금 더 같이 살아보자고… (눈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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